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남자화장실 안에서 뜻밖에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남자용 소변기 앞에서 또래의 남자를 꽉 끌어 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평소에 여자 청소부들이 남자화장실을 출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온 터라 그런 풍경에는 얼추 적응이 됐다 싶었는데도 순간적으로 ‘아차 내가 잘 못 들어왔나’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요즘은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도 젊은 사람들끼리 부담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 여인이 한 손으로는 남자를 끌어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남자의 허리띠를 서서히 풀더니 이어 남자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속옷까지 슬그머니 끌어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남성의 소중한 고추를 손으로 받쳐들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렇게 말을하면 이 무슨 음란하고 해괴망칙한 이야기인가 싶을 것입니다만, 사실은 지난 주 제가 들렀던 어느 종합병원 남자화장실에서 보았던 풍경입니다. 어쩌다 한창 나이의 남편이 중병에 걸렸는지, 자기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부둥켜 안고 남자들만 조용히 드나드는 곳에 염치불고하고 들어와서 그 가녀린 몸으로 장정인 남편을 간신히 부축하여 한 손으로 겨우겨우 바지 지퍼를 열어 소변을 볼 수 있게 도와 주는 젊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몹시 답답했습니다. 많이 어색해 하고 부끄러워하는 여인의 몸짓이 엿보여서 선뜻 다가가 부축해 주겠다는 말도 잘 못한 채 볼 일을 보는 척하며 곁눈질로 그 젊은 부부의 몸짓을 제법 오래 훔쳐 보았습니다. 앞뒤 형편을 살피지 않고 앞서 제가 말씀드린 것과 같은 내용만을 말한다면 천하에 버릇없고 음탕한 짓으로 욕을 얻어먹을 그 젊은 여인의 행동이 사실은 제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장면보다도 더 아름답고 따스하게만 느껴져 화장실 문을 나서면서 조용히 하나님께 그 남편의 회복과 조기 퇴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떤 몸짓의 겉만 보고 그런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내면의 숨은 동기와 상황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하면, 같은 몸짓에 대해 그처럼 정반대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조심스럽습니다. 우선, 겉으로 드러난 그 몸짓을 내가 정확히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늘 있고, 나아가 그 몸짓 속에 담긴 말 못할 안타까운 속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여 칭찬받아 마땅한 어떤 몸짓에 대해 정말 참혹하고 무참한 욕설을 해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 지면에 실린 한 장의 보도사진에서도 화면에 감취어진 사진기자의 의도와 시각을 읽어내는 지혜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네 일상사 역시 사물의 중심을 꿰뚫는 지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검은 것을 희다하고 흰 것을 검다고 벅벅 우겨대며 함부로 재판관 노릇하여 남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사람들은 짐작도 할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곳의 탄식과 아픔을 세밀히 살피시고 싸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신비로운 지혜를 온전히 배우고 싶은 마음, 비단 저만의 소망은 아닐 터이지요. (2006. 3. 30.)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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