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절친한 후배 몇 사람과 함께 모악산 산행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속도를 맞춰준다고 애를 썼는데도 산중턱에서부터 서로 거리가 좀 멀어지게 되었고 뒤쳐진 후배들 가운데 몇 사람은 아예 중도에서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되돌아간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기다리던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점심을 먹던 중에 후배 하나가 정색을 하면서 “그렇게 무슨 달리기 시합하듯 후닥닥 올라갔다 내려올 것이면 도대체 무엇하러 산에 오르느냐?”고 물었습니다. 함께 가려고 나도 나름대로 애는 썼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제 말에 순순히 수긍하지는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 인생이 그렇듯이 무슨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등산로를 택해야 하는지, 속도는 얼마나 내는 것이 좋은지, 힘들고 숨찰 때 어디서 몇 번이나 쉬어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무슨 모법답안같은 것은 아예 없습니다. 어느 등산로나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있고, 빠르면 빠른 대로 또 좀 늦으면 늦는 대로 각기 그 나름의 맛과 멋이 달리 느껴집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산행 속도가 빠르냐 느리냐에 따라 산행의 맛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속도를 높이면 산행을 빨리 마치고 다른 볼 일을 볼 수는 있습니다. 산행속도를 낮추면 산행의 아기자기함을 충만히 느끼는 반면에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다른 일들을 접어야만 합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렇듯 각기 장단점이 엇갈립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만 들어가면 졸음운전을 자주 하는 바람에 몹시 조심스러워 장거리 운행은 할 수 있는 대로 삼가는 편이고 고속도로에도 할 수 있는 대로 들어가지 않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운전할 때만큼은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진짜 이유는 도로변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자리에서 잠시 멈춰서도 괜찮기 때문입니다.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주행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고, 차창 밖에 잠시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경치가 어쩌다 눈에 들어와도 마음 속 깊이 감동이 채 전달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 풍경이 뒤쪽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는 아쉬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숱하게 지나다닌 섬진강변 국도를 짬짬이 즐겨 찾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 허덕일 때만해도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정직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다시 왔습니다. ‘황금들녘’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가을 들녘 구석구석에 풍요로운 열매가 가득합니다. 이번 가을철만이라도 삶의 속도를 아주 조금만 늦춰 보십시오. 먹고살기 바쁜 세상에 거 무슨 사치스런 말이냐고 나무라지 마시고,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아무 들녘이나 잠시 나가셔서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로 기념할 만한 가족사진이라도 한 장찍어 보십시오.(2006. 9. 28.)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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