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외가쪽 어르신들 가운데 유명한 서예가가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지낸 저는 자연스럽게 외가 어르신의 글씨 쓰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며 자랐습니다. 아버님 말씀으로는, 생전의 강암 선생님도 그 어르신의 예서 솜씨를 아주 귀하고 높게 평가하셨다 합니다. 그래 그런지, 저 또한 일찍부터 붓을 손에 쥐고 글씨를 배울 수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러 미술대학에서 주최하는 서예대회에 학교대표로 자주 나섰고 상장도 제법 많이 받았습니다. 한때는 감히 전라북도 미술전에 작품을 낼 궁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느라 결국 붓을 놓고 말았지만, 아무튼 서예에 대한 연민만은 무슨 앙금처럼 제 가슴속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벼루와 먹, 그리고 붓과 종이를 펼쳐놓을 만한 공간도 만만치 않고, 또 차분히 붓을 놀릴 시간 여유도 거의 없어서 가끔씩 서예작품 전시회장에 남몰래 들락거리며 서예에 대한 향수를 달래 오던 중 몇 년 전부터 슬그머니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편화된 까닭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매일 한 시간씩은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런 자투리 시간을 조금 더 잘 활용하는 한 가지 좋은 방편이 될 것 같은 생각에서였습니다. 이왕 찍는 사진, 조금 더 잘 찍어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동안 사진에 관한 책을 꾸준히 사서 읽으며 혼자서 기초부터 사진 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많은 생각 끝에, 얼마 전에는 한국기독사진가협회(KCPA)에 가입하여 홈페이지 갤러리에 제가 찍은 사진도 몇 점 올려놓았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우리가 늘 무덤덤하게 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렌즈 속 풍경을 볼 때마다 우리를 사랑으로 굽어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게되고, 그때마다 제 카메라의 렌즈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새로워집니다. 똑같은 피사체인데도, 언제, 어느 각도에서, 얼만큼의 거리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옵니다. 불과 몇 초 차이로, 불과 몇 도 안 되는 각도 차이로,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거리 차이로 화면에 담기는 피사체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집니다. 바늘 끝만큼 아주 작은 차이에서 걸작과 졸작이 뚜렷이 엇갈립니다. 피사체의 변화가 비교적 적은데도 무수한 결과물의 가능성이 나온다는 것이 때론 경이롭습니다. 그래서 사진은 늘, 피사체가 아니라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선과 마음을 담는 일이 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를 바라보는 각도나 눈높이가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실체로 보이는 것을 조금씩 깨우쳐 나가면서, 내가 세상을 보는 각도, 내 곁의 친애하는 이들을 보는 각도는 또 얼마나 폭이 넓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렌즈 각도를 아주 조금만 바꾸면 졸작이 걸작으로 바뀌듯이, 이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걸작으로 보이도록 내 시각을 다양하게 바꾸는 훈련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곤 합니다.(2006. 9. 21.)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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