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은어에 ‘범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범학생’을 비꼬아 부르는 말입니다. 학창시절 저는 아주 눈부신 범생이였습니다. 5남매의 맏이로서 말 그대로 쑥맥 중의 숙맥으로 자랐습니다. 범생이답게, 늘 어른들께 순종 잘하고 하라는 공부도 꼬박꼬박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와 집 외에는 달리 나다니는 곳도 별로 없었고 그래서 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과 학교 사이를 정직하게 오갔습니다. 좀 조숙했던 친구들이 자주 드나들던 학생 지도부실같은 곳은 저하고 아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통신표의 품행 평가란에 ‘이 아이는 성품에 관한 한 학교에서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그냥 집에 가도 좋다’고 거의 모든 항목에 줄줄이 ‘가, 가, 가’라고 써 있었겠습니까? 세상을 순둥이처럼 착하게만 사는 사람을 일컬어 흔히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은 법이 없으면 이 세상을 잘 살 수 없고 오히려 법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살 수 있는 사람 축에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저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렇게들 말씀을 자주 하셔서 한동안 저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려니 여기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나쁜 평은 아닌 듯하여 굳이 그렇지 않다고 벅벅 우기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저 같은 사람만 있다면 그야말로 살 만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무렵부터 어머니의 간청과 강압을 못 이겨 교회당 출입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 마음 속에 이상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당을 출입하는 사람들 입에서 한결같이 ‘나는 죄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양반들이 틈만 나면 저 같은 범생이에게도 “당신은 죄인”이라는 몹시 기분 나쁜 악평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제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듣던 호평을 아예 깡그리 무시하고 그런 악담을 해대는 것이 늘 언짢고, 걸핏하면 ‘벌레만도 못한 인생’ 어쩌고 하는 것이 기분 나빴습니다. 저 같은 수준급 범생이를 그리 함부로 헐뜯는 기독교인들이 제 정신인가 한동안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한 7-8년 몹시 기분 나쁘고 속 상한 세월이 속절없이 흐르던 어느 날, 느닷없이 그토록 듣기 싫고 역겹기만 하던 성경말씀의 강렬한 빛이 제 가슴의 창틈으로 비쳐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사무실 안에 무수히 떠도는 먼지입자들을 전혀 보지 못하다가도 새아침 창틈으로 비쳐드는 강렬한 아침햇살 속에서 비로소 무수한 먼지 입자들의 군무를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빛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빛나는 모범생인 줄 알고 지낸 일이 너무 황당한 착각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한 순간에 ‘나보다 더 나쁜 인간은 세상에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참된 모범생 인생의 첫 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범생이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의 빛을 향해 오랜 세월 강철처럼 굳어진 마음의 창을 한 번 열어보시지 않겠습니까?(2006. 9. 14.)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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