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과부지(自過不知)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허물은 잘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찌 자기 허물뿐이겠습니까? 세상살이,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을 숱하게 겪노라 허구한 날 불면의 밤을 지새며 실타래처럼 꼬인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골똘히 지내다보면 가슴만 한없이 답답해지고, 그런 세월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와 아픔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하루에도 수천 번씩 감정이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락가락 요동치게 됩니다. 요동치는 감정의 골을 미처 다 헤아리기도 어렵고 그것을 차분히 통제할 힘이 거의 없이 버둥대다 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에도 괜한 짜증이 나고 끊어진 동맥에서 피가 솟구치듯 감정이 울렁거릴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유행가 가사도 그래서 나왔을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내가 남을 이해한다는 게 기껏해야 수박 겉핥기 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거나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럴 줄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그만큼 사람이 사람을 아는 일이 어렵다는 뜻일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에 대해 그저 그렇고 그런 정보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고향이 어디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 나이와 용모, 출신 학교 등등에 대해 얼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상황의 미묘한 변화에도 정말 예민하게 반응하며 순간 순간 마음에 극심한 변화를 겪는 한 사람의 내면과 인격 그리고 성품의 이러저러한 그늘을 세세히 알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제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가까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속내를 속속들이 아는 일은 일이십 년 함께 사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지 싶습니다. 지금은 70대 노인이 되신 저의 어머님은 차분한 편이신 아버님과 달리 성격이 무척 활달하십니다. 할 말을 속에 담아두고 끙끙 앓는 체질이 아니셔서 그때 그때마다 할 말은 하시는 편이십니다. 어린 시절 무척 내성적이었던 저는 톡톡 쏘는 느낌의 어머니를 많이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ROTC 장교로 공수특전단에서 군 복무하던 때였습니다. 제가 소속된 공수여단이 최전방에 있던 탓에 딱 한 번 휴가를 받아 전주에 왔었는데 꿈에 그리던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밀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루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베레모에 얼룩무늬 특전복을 입고 깜둥이가 되어 들어오는 큰아들을 보자마자 아예 맨발로 후닥닥 달려나와 다 큰 자식의 목에 매달려 제 얼굴에 당신 얼굴을 하염없이 부벼대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겁니다. 그러시는 어머니를 보며 ‘아, 우리 어머니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부모님을 알려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아는 일,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평생 걸리는 일 같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이 사람을 나날이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며 서로서로 따스하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을 때, 험한 세상 그래도 살맛이 나지 않겠습니까?(2006. 9. 7.)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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