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서는 안 될 급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어느 날 아침 일찍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늘 부족한 잠 때문인지, 이상하게 고속도로만 들어가면 10여분도 채 안 되어 졸음운전을 하는 아주 좋지 않은 습성 때문에, 장거리 운행을 해야할 경우에는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뒷좌석은 때로 좀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표를 살 때 가능하면 앞좌석 표로 달라고 매번 매표원에게 당부합니다. 그 날도 매표원이 맨 앞좌석의 표를 주어서 운전기사 바로 뒷좌석 통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쪽 자리가 그래도 주행 전방 차량의 흐름과 주변 풍경을 비교적 잘 볼 수 있는 자리여서 제일 편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평소 바깥바람을 마음놓고 쐴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서 어쩌다 한두 번 출장을 가는 길에라도 고속도로 주변 풍경을 틈틈이 감상하며 계절의 꾸준하고 은근한 변화를 잠시 엿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전체 가구수의 약 90% 정도가 자가용을 지니고 살 만큼 사는 형편이 좋아졌고, 운전면허증 없는 사람이 천연기념물 정도로 여겨질 만큼 자가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휴일이나 명절연휴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가는 곳마다 차량이 한적한 도로는 거의 없습니다. 고속도로도 예외는 아닙니다. 복잡한 고속도로에서 사고라도 나면 그 사고를 수습하느라 한두 시간 지체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그 날도 꼭 제 시간에 참석해야할 중요한 회의인 만큼 한 시간쯤 여유를 두고 좀 일찍 나서서 서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전주 나들목을 지나 논산-천안간 민자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저만치 앞에 대형화물트럭 두 대가 보이는가 싶더니 잠시 뒤 제가 탄 버스가 그 트럭들의 꽁무니 쪽에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일렬로 함께 달리던 트럭 한 대가 추월선으로 느닷없이 나서더니 순식간에 그 대형트럭 두 대가 차선 두 개를 모두 다 차지하고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느린 속도로 주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월선에 들어선 차도 속도를 내지 않고, 주행선에 있는 차도 속도를 늦춰 주지 않고 그렇게 트럭 두 대가 아주 사이좋게 고속도로를 점령한 채 느긋하게 주행하는 시간이 마냥 길어지면서 순식간에 이 트럭들 뒤로 뒤따라 고속주행을 하던 차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섰습니다. 참다 참다 못한 버스 기사님을 비롯해서 트럭 뒤에 줄줄이 따라붙은 수많은 차량들이 연신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깜빡거리고 별 짓을 다 해도 무려 20-30분 동안이나 이 두 대의 트럭이 고속주행을 방해하며 한심한 행패를 부렸습니다. 언젠가 공연차 저희 교회를 찾았던 가수 홍순관 씨가 “내가 내 길을 가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내 주는 것”이라고 했던 말을 내내 곱씹으며 아주 빠듯해지는 시간약속 때문에 저 또한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혹시 나는 내게 걸맞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다른 사람들의 앞길을 하염없이 막고 있지나 않은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2006. 8. 31.)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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