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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벌써 쉰 셋이 되었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 동기생들을 만나 늘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데, 놀랍게도 두어 해 전부터 화두가 며느리 이야기 사위 이야기로 바뀐 것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저보다 한 십여 년 더 나이 드신 분들의 많이 노쇠한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깜짝 깜짝 놀라다가, 저 또한 그 분들의 십여 년 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 또 한 번 깜짝 놀라곤 합니다. 돌아보면 아득한 세월, 때로는 숨막힐 듯 답답하고 또 때로는 한없는 즐거움으로 듬성듬성 수놓인 삶의 골짜기를 빠져 나오면서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듯 인생 5학년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남아 몹시 춥고 배고프던 유년기와 오늘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 어정쩡하게 그 문화충격의 틈새에서 허덕이는 세대의 한 사람으로 늘 샌드위치처럼 살고 있습니다. 문화충격의 폭이 큰 만큼 우리 사회 노장년 층 사람들의 삶이 몹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소년기에는 늘 꿈에 쫓기다가 이제는 신세대 문화에 밀려 또 다시 허둥대는 모습에 늘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또 한 손에 총칼 들고 밤을 낮 삼아 뼈 빠지게 죽어라 일해서 일궈 놓은, 이제는 좀 살 만한 세상에 미처 적응하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참 안됐습니다. 성능 좋은 컴퓨터로 모니터 앞에 앉아 편리하게 글을 쓰고 글을 고치는 순간에도 지나온 50여 년 세월의 아득한 구비는 가슴 한 쪽에 여전히 싸아한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삶의 심각한 구비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무언가를 당장에 결정해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들을 숱하게 넘기며, 그 때 그 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생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또 한 끝에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이미 지나온 길보다 훨씬 짧겠지만, 가던 길 잠시 멈추고 삶의 호흡을 고루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분명하게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늘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세상일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저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엇비슷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된 일이 거의 없는데 인생의 항로를 근근히 헤쳐 오늘 여기까지 왔다면 내 삶의 조종간을 나 아닌 어느 누군가가 붙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제껏 그래왔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남은 세월이 갈 것이라는 것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구약성경의 말씀, 세상살이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생 5학년쯤 되어서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항공기, 5분 뒤를 모르는 어설픈 나보다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조종간을 넘겨 드리는 것이 참 안식과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조금 더 일찍 안다면 분주하고 고단한 세상살이가 훨씬 더 여유롭고 푸근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2007. 3. 22.)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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