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속도’입니다. 자동차나 항공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전자제품들의 사양표에는 늘 그 제품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를 강조하는 숫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속도를 표시하는 데 1/100초로도 모자라 1/1000, 1/10,000초 또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를 표시하곤 합니다.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된 컴퓨터를 고를 때도 중요한 요소는 속도입니다. 사용자가 실제로는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인데도 제품 사양표에 들어 있는 속도 표시 숫자가 어떠냐에 따라서 어떤 제품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때로는 멀쩡한 제품이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운동경기에서도 속도를 겨루는 종목에서는 머리카락만큼의 속도 차이까지도 식별해낼 수 있는 고성능 전자장비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경기도중에 그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속도 경쟁은 치열하기만 합니다. 단 반걸음이라도 누가 더 앞서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고 그 승부의 갈림길에서 누구는 삶의 극한 환희를 맛보고 또 누구는 평생 가슴속에 남을 한을 품고 쓸쓸히 돌아서야 합니다.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가 굳이 700만 화소까지 가야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제조회사들이 그처럼 높은 숫자를 자랑하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자기네 회사가 앞서가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카메라의 셔터 속도가 1/8,000초까지 나오는 것들이 있는데 실제로 이렇게 빠른 셔터 속도에서는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양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사진이 거의 찍히지 않는데도 소비자들은 그 높은 숫자가 상징하는 숫자에서 제조사 기술 발전의 속도를 자주 확인합니다. 똑같은 속도 경기인데도 마라톤 경기는 단거리 경주와는 또 다른 멋과 맛이 있는 듯합니다. 단 몇 분 또는 몇 초만에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라 두시간 넘는 긴 시간동안의 끈질긴 달음박질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초반에 남들보다 좀 앞서 나갔다 해서 그 선수가 반드시 결승선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는 법이 없고, 초반 중반에 좀 뒤쳐진 선수가 결승선에 제일 먼저 들어오면 안 된다는 법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산행, 많이 익숙한 길인데도 속도 조절에 조금만 실패하면 유난히 힘이 들고, 속도 조절을 조금 잘 하면 훨씬 가볍게 오를 수 있음을 자주 느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흔히 마라톤이나 등산에 비유하는가 봅니다. 며칠 전, 책상 위에 가습기 대용으로 놓은 조그만 접시에 물을 보충하기 위해 접시를 들고 수도꼭지를 튼 순간, 수도꼭지를 너무 많이 열어 버린 탓에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세차게 튀는 바람에 아무리해도 접시에 물이 잘 담기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도꼭지 손잡이를 거꾸로 돌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물이 떨어지도록 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접시에 원하는 만큼의 물이 담겼습니다. 우리 인생의 그릇에 보람과 기쁨의 물이 잘 담기지 않는 이유, 혹시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런 것은 아닌 지,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십시오. (2007. 2. 22.)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