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고유의 대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설 명절의 의미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명절의 풍속도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네 삶의 형편이 많이 좋아진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회 구조가 빠르게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교통과 정보통신 체계가 눈부시게 발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 같으면 괴나리봇짐을 지고 한 보름이나 한 달쯤 걸려 오갈 수 있었던 서울을 하루에도 두어 번씩 오갈 수 있을 만큼 물류 체계의 흐름이 어지러울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편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동전화와 위성통신 그리고 인터넷의 혁명적인 변화로, 문구점에서 편지지와 필기도구를 열심히 고르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 고부라지게 앉아서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우고 하룻밤 씨름을 한 끝에 편지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정성껏 쓴 다음 우체국에 달려가 우표를 사 붙여서 우편함에 넣고, 돌아오는 순간부터 답장을 기다리느라 날이 날마다 행여 우체부가 오는가 문밖의 인기척을 살피며 설레는 가슴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는데, 이제는 어지간한 것들은 다 이동전화 문자 메시지나 음성 메시지로, 조금 긴 내용은 전자메일로 보내는 바람에, ‘우표’니 ‘우체국’이니 하는 말들은 우리 생각의 박물관 한쪽 구석에 처박혀 매캐한 먼지가 내려앉은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별로 없어 하루 두세 끼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삶의 최고 목표이자 꿈이었던 시절, ‘용돈’이라는 말이 곧 ‘사치’와 같은 뜻을 지니던 시절에, 아이들에게 학용품값 외에 용돈 같은 것을 주시는 어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큼지막한 새 옷을 입고,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두어 번 딸딸 걷어올린 채 동네 사랑방과 가까운 어르신들을 찾아 너부죽이 큰절을 한 번 하면, 어린것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의 종이돈이 복돈으로 주어졌고, 그 날 열심히 돌아다니며 모은 돈이 그 해의 용돈이 되기 때문에 어린것들은 명절, 그 중에서도 설날을, 마치 군대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이 제대하는 날을 기다리듯 눈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분주해도 명절에 직접 찾아뵈어야만 하는 어른들이 누구에게나 꼭 있기 때문에, 어느 고을이나 그 고을에서 좀 명망 있다는 집은 설 명절을 전후하여 인사 차 찾아오는 이들로 늘 북적댔습니다. 오늘날 장례식장에 줄줄이 늘어선 화환 숫자처럼, 명절에 찾아오는 이들의 숫자가 곧 그 집안의 위세를 가늠하는 잣대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름도 낯선 심부름센터니 뭐니 하는 것들이 슬금슬금 생겨나더니, 또 얼마 전부터는 택배니 퀵서비스니 하는 유통대행업체들이 생겨 성업중입니다. 명절에는 평소 위탁물량보다 약 40-60% 정도가 증가한다는 통계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모든 인사치레는 미리 미리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로 해결하고 명절연휴 기간에는 해외 나들이를 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고단하고 분주한 세상살이에 시달리느라 보고잪은 얼굴 일년에 한두 번 보는 일마저 어려울 정도로 어느 듯 ‘택배전성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2007. 02. 15.)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