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금강 하구 둑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새만금 개펄에 철새 떼가 많았다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방조제가 막히기까지 그곳에서 철새 구경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터라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 보는 철새떼, 그 유명한 서해안 노을을 배경 삼아 땅거미 질 무렵부터 밤을 틈타 열심히 어딘가로 날아가는 철새의 몸짓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얼마 전 익산에서 발생한 의사조류독감으로 양계농장과 오리농장이 큰 타격을 받아 많은 이들이 실의에 빠져 있고 이어 김제 지역으로까지 피해지역이 확대되면서 메추리 사육농가까지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이 조류독감의 전염경로를 이리 저리 탐색하는 중에 ‘철새’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발병 원인을 뜬금없이 철새 탓으로 돌려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려는 당국자들의 안일한 생각 탓에 애꿎은 철새들이 참 억울하게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과 같은 조류독감이 아니더라도, 언제부터인지 또 무슨 까닭에서인지 우리 사회에서 ‘철새’라는 이름은 늘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쪽으로 각인돼 왔습니다. 만일 사람처럼 ‘국제철새협회’라는 게 있다면 협회 차원에서 사람을 명예훼손죄로 고발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철새’의 이미지는 어둡게만 채색되어 왔습니다. 철따라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외롭고 먼 길을 돌아다니다 생을 마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 만드셨기 때문인데, 아무튼 철새 입장에서는 얄팍하고 처세에 능한 한심한 인간철새들 덕분에 참 속상하고 억울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한 해를 돌아볼 때마다, 짧디 짧은 한 해를 일관되게 사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하물며 한 평생 흔들림 없이 처음 먹은 마음, 처음 지녔던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고 사는 일은 더더욱 힘들 것 같습니다. 연말이라 가뜩이나 어수선한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의 개편 움직임이나 새로운 줄서기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엿보이면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인간 철새’들 때문에 또 다시 애먼 ‘철새’들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에서는 한 번 공화당원은 평생 공화당원이고 한 번 민주당원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평생 민주당원으로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변치 않는 그 소신과 의지가 균형을 이루면서 미국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두 바퀴로 잘 구른다는 평도 있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별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의 소속 정당을 보고 한 표를 주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당선만 되고 나면 유권자의 허락도 없이 제 맘대로 인간적인 이해득실을 따져 소속정당을 바꾸는 철새정치인들을 숱하게 보며 평생 가슴않이를 해왔습니다. 주민소환제가 당장 어렵다면 당선된 다음 유권자의 허락 없이 정당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인 안전장치라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조차 어렵다면, 진짜 철새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선거과정에서 소신도 정치철학도 없이 명예욕에만 눈이 먼 인간 철새들을 분별하는 안목과 지혜가 유권자들에게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2006.12.21.)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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