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방송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생사를 모른 채 흩어져 살다가 그리던 피붙이들을 겨우 겨우 다시 만나 TV 카메라 앞에서 수십 년 건너 뛴 세월의 강에 재회의 감격으로 다시 핏줄의 다리를 놓는 감동적인 모습을, 손에 땀을 쥔 채 덩달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끝끝내 피붙이와 친지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같이 속상하고, 어쩌다 꿈에도 보고싶던 이들을 만나 기뻐 뛰는 모습에 같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방송을 지켜볼 때마다 늘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한 가지는, 제법 철이 들만한 나이에 헤어졌다는 사람들이 헤어질 당시 본인의 이름이나 고향동네의 이름 또는 찾고자 하는 친족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제넘게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연탄가스에 심하게 중독되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을 몇 차례 겪고, 반신마취 수술과 전신마취 수술을 거듭 받아서 그런지, 그 좋다던 기억이 세월 따라 조금씩 흐려지는가 싶더니, 인생 5학년에 접어든 몇 년 전부터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영 한심한 건망증 때문에 몹시 황당한 일을 혼자서 자주 겪습니다. 시스템 다이어리와 PDA에 약속시간과 장소를 이중삼중으로 꼼꼼히 적어두고도 아예 메모한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고 지나가 버리는 경우는 그래도 눈감아줄 만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교회당과 집을 겨우 오가는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도,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설 때 단번에 차를 출발시키는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집에서 교회당 사무실로 올 때도 마찬가지, 꼭 한두 번은 더 집과 사무실을 들락거린 뒤에야 사무실과 집에 도착합니다. 그만 하면 다 챙겨왔다 싶은데 막상 무슨 일을 하려고 가방을 열면 중요한 서류 한두 가지가 빠져 있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우들과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금방 전화로 약속해 놓고 다른 데서 걸려온 전화 한두 건 받는 사이에 그만 약속을 까맣게 잊고 아주 오랫동안 그 교우를 한데서 한없이 떨게 만들기도 하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교우들의 이름이 까맣게 생각나지 않아 혼자 난감해 할 때도 많습니다. 그동안에는 아내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대응을 했는데 아내까지 인생 5학년이 된 뒤로는 아내도 그리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알게 됐습니다. 며칠 전, 세면장에서 머리를 감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머리에 샤워기 꼭지를 들이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나오질 않아, 어디 고장난 것은 아닌가 하고 일어서서 손에 들린 샤워기를 보는 순간 그만 질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 손에 샤워기 꼭지가 아니라 헤어 드라이어가 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치매는 아니니 걱정 말라는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도 별 위로가 되지 않아 온종일 마음이 몹시 착잡했습니다. 삶의 본질과 별 상관없는 것들, 더 이상은 필요 없어 까먹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의 근원인 생명의 말씀까지 홀랑 다 까먹을까봐 은근히 조바심이 납니다. (2006. 12. 14.)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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