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곱 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어린 3남매를 어머니 혼자 거두게 되었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우리와 따로 사셔야 했고,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큰누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재봉회사에 취직했다. 비가 오면 천장에 비가 새는 세모난 방, 바퀴벌레며 쥐가 드나드는 초라한 부엌에서 힘겨운 삶이 계속되었지만, 우린 "부모 없이 사는 애들이라 그런다"는 말 듣지 않으려고 항상 밝고 바르게 생활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가난 때문에 기죽어 지낼까 봐, "언제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먹어라" 하며 용돈을 주셨다. 하지만 우린 고생하는 어머니 생각에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꾹꾹 참아 가며 꾸준히 저축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어머니의 생신, 나는 그 동안 백 원, 이백 원 모은 돈으로 스타킹을 샀다. 그런 스타킹은 처음이었던지라 혹시 더위에 늘어나지나 않을까 걱정돼 냉동실에 스타킹을 넣어 두고 어머니를 기다렸다. 저녁 무렵 피곤에 지쳐 돌아오신 어머니는 내가 내민 스타킹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갑자기 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날 어머니는 다른 때와 달리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된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 이야기를 하시곤 한다. 어머닌 그때 내가 무척 기특했고, 그런 아들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지금껏 미안하다 하신다. 어머닌 그때 그 스타킹을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 그리고는 군생활 하는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 스타킹을 꺼내 보며 마음을 달래신단다. 군대에서 휴가 날짜를 받고 어머니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보면, 냉장고에 스타킹을 넣어 두고 어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