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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주는 자의 복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는 받는자가 복이 많은것 같게 보이지만
실은 받는것보다 주는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줄것이 있는것이 좋은가?
받아야 하는 입장이 좋은가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을 좋아할까?
세상이 순리를 역리로 바꾸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이치를 거스리는 세상의 힘의 논리가 작용한 까닭이다.
있는 사람이 없는자에게 주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세상은 힘 없는자, 갖지 못한자가 가진자, 힘있는자에게 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기묘한 생존원리가 가치의 바닥에 더러운 앙금처럼 깔리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겐가 많이 받는 사람이 권력이 있는자요. 힘이 있는자요.
높은 자라는 잘못된 허상을 갖게 되었고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자연스런 이치는
성경속의 잠언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내가 만일 주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없는 중에도 주는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는 역행의 혁명가적 대열로
삶의 방향을 바꾼 위대한 개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사회개혁은 혁명가의 몫이 아니라 혁명적 사고를 가지고
지극히 작은 삶에서 실천하는 이름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믿는다.

주는 행복을 맛 본 자는 계속 누구에겐가 줄거리를 찾게 되어 있고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포만감에 가득채워져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받을 것을 생각하며 살다보면 왜 내게 안 주나 섭섭한 상황이 생기게 되어있고
어떻게 받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늘 결핍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삶의 방향성의 문제다.
주고 싶은가? 받고 싶은가?
어디로 내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 있는가?
결핍인가? 풍성함인가? 를 결정하는 화살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겐가 받을때 당장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금방 부담감을 갖게 되고 실제로 부담을 안고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겐가 줄때는 당장은 손실이요 내게서 무엇인가 비워지는 느낌이지만,
어디로부터 오는 만족감인지 돌아올 것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훨씬 가볍고 감사한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받을때 보다 누구에겐가 줄때 기분도 더 고급스럽다고 생각한다.
주어본 자만 아는 행복이다.

그러면 복 받고 행복한 일인데 왜 못 주는 것일까?  도대체 왜 우리는 못 주며 사는가?
첫째는 줄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게는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준다는 것은 감추인 보물처럼 찾아내야 한다.
두 개 이상 무엇인가를 가졌다면 한 개는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으면
때로 줄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 극복될 수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물건을 간직해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베푸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라고 생각하면
물건을 간직해둘 필요가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 투자에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다.
미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내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한 투자는  
바로 이웃과 무엇이든 나누어 갖는 것이다.

오늘 나누지 못하면 영원히 나눌 기회가 없는 것처럼 나누고 주어야 한다.
마음을 두고 실천해 보면 점 점 더 확신을 갖게된다
아주 작은 삶의 패턴이지만 장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행복이 바로 주는 것이다.

그러면 줄 때 주의사항은 무엇일까?
내가 안쓰는 것 내가 필요 없는 것을 먼저 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자칫하면 나의 쓰레기 하치장이 이웃은 아니다.

내게 필요 없어서 버리기 위해 이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바자회에 입던 내복 목에 때가 쪼질쪼질 묻은 것을 내 놓는 경우를 보았다.
여선교회에서 쓰레기 버리느라 고생을 했다.

준다는 것은 꼭 필요한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므로
깊이 관심을 갖고 그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줄 수 있다.
그것이 돈이던, 물건이던, 사랑이던, 시간이던,
그가 필요할 때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것은
그에게 더 가까이 더 깊숙한 인간관계로 나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내게 너무도 소중한데 그에게 더 소중하겠다 싶을때는
내가 갖고 있는것보다 그에게 주는 것이 더 놀라운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기쁘게 내것임을 포기하고 기꺼이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만족은 없을것이다.

만일 내게 필요없고 상대방의 요구를 알지 못한채 잘 못 줄 경우는
오히려 불쾌감이나 구제받은 기분으로 유감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주는 행위가 도리어 원한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

언젠가 나는 어마어마하게 큰 케익을 선물 받아서 감동했으나
아이들에게 케익을 줄려고 칼을 대어 썰었던 순간 너무도 혐오스러웠다.
케익속에 파랗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먹을수 없는 것이어서
기대 가득찼던 아이들의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던 기억을 한평생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 선물을 주었던 사람은 한 교회에서 함께 늙어가는 처지이지만
이 이야기를 그에게 아직도 말하지 못했다 무안할까봐서.

그 사람은 사업가였고 누구에겐가 선물 받았던 것을 집에 두었다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인데 정말 그 케익이 썩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것이다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을 처리하기 위해 우리를 택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주고 복을 받은게 아니라, 안 주었더라면 더 좋을뻔 한 경우이다.

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어떤때 그럴까?
주고 싶지 않은데 줄 수 밖에 없었던 체면치례나
마음의 동기가 없이 주는 행위는 착취나 상실이지
주는 행위가 될 수 없으므로 행복할 수 없는것이다.

아부하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기대하면서 어쩔수 없이 주어야만 하는 경우나,
안주면 괘심죄에 걸려서 후환이 두려울때는 정말 안타깝게도 주고도 행복하지 못하다.
주면서 행복이 없는데 복받는 일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뜨거운 사랑의 동기가 없이 어떻게 진정한 주는 행위가 따라 올 수 있겠는가?

모쪼록 우리의 삶의 패러다임이 주는자가 복이 있다는 순리를 따라 사는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나부터 주는 자의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며
남은 날들을 살아보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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