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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사랑과 섬김의 손길” 서울대학교 기독교동문회 서광 25호



“사랑과 섬김의 손길”  서울대학교 기독교동문회 서광 25호

제가 지난 서광 제 24호에 “나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며”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나의 유학생 시절, 귀국 후 목회 사역과 교수사역과 선교사역에 종사하던 시절, 아시아 교회의 지도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선교와 연합사역에 관여하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추려서 서술했습니다.

오늘은 부족한 제가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랑과 섬김의 손길”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목회의 일도 교수의 일도 선교의 일도 사회 참여의 일도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생각할 때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사랑과 섬김의 일”보다 더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귀중하게 보시면서도 구체적으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을 아주 귀중하게 보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금식과 기도와 제사로 간주하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 성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지 않는 형식적인 화려한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1,15-17).

성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시기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사랑하라”(요 13:34).“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리고 각색 병자들의 병든 몸을 손으로 만져주시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셨고 제자들의 발까지 친히 물로 씻어주시면서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 8: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보수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중의 죄인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고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지도 않던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과 공산주의자들과 무슬렘 사람들을 멀리하면서 비판하던 반일 반북 반공 반 무슬렘 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동족으로 받아드리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어려움에 처한 무슬렘 사람들에게도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방글라데시와 북한과 중국 연변 지역과 아프가니스탄과 필리핀과 파키스탄 등지를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죄인중의 죄인이기는 하지만요.

저는 부족하지만 지난 18년 동안 중국 연변 지역의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50여 명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면서 돌아보게되었습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고아들이고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갔습니다. 저는 지난 18년 동안 거의 매년 연변 지역을 방문하며 어린 학생들과 저들을 관리하는 지역 회장들을 만나며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그 동안 설교한 일도 전도한 일도 없지만 순수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폈기 때문에 수 많은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면서 지역의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모르던 지역회장들의 입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들이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연변 조선족 학생들이 저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들이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 3개만 골아서 소개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과 모든 후원자선생님들에게. 저는 5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8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의 손길아래서 자랐습니다. 저는 중국 연변 석현에서 살다가 길림성 백성사법대학교 입학시험을 추리게 되였습니다. 자신감 있게 시험을 추렸습니다. 근데 입학통지서를 기다리는 제 마음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모두 입학통지서가 오지 않을까바 두려워했었지만, 저는 입학통지서가 오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입학금이 저한테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였습니다. 이렇게 두려워하고 설레일때 저는 김명혁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한번의 기적과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저는 지금 잘 알구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드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입학통지서를 기다려 왔구요... 또 그 입학통지서를 받았구요... 다함 없는 사랑으로 대학이라는 지식의 바다에서 부담 없이 날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목사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목사님은 저한테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학 2학년 하반기에 전 할머니를 떠나 보냈습니다. 저한테는 또 한번의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럴적에도 지금도 목사님은 저한테 용기를 주셨습니다.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저한테 베푼 너무 큰 은혜였음을 전 잘 알구있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 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전 항상 가슴 깊은 곳에 “난 특별한 사랑을 받고 너무 행복하게 살아가는 행운이다” 라고 새겨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온 만큼 언젠간 내가 받은 특별한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 가리라고 다지면서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2008년 4월 15일 목사님의 딸 춘희가”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부디 목사님의 건강을 빕니다. 지난 8월에 목사님의 후원과 큰 도움으로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게 꿈처럼 말입니다. 절망하고 눈물로 얼굴을 씻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학생활이 안정되었습니다. 가끔씩은 꿈만 같아서 자신을 꼬집어 볼 때가 있었습니다. 학술의 최고학부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또한 목사님께서 주신 여러 면의 도움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한 달간 학교생활의 매일 매일을 자신을 처음부터 착실히 하도록 채찍질하곤 했습니다. 목사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체험한 저로서는 주님만 섬기는 자가 되리라는 생각뿐입니다. 앞으로 3년간의 대학생활은 또 하나의 시작이고 결속이지만 늘 그래왔듯이 겸손과 감사함을 몸에 익히고 마음 속에 지니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것과 더불어 살지만 주님만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넘치도록 받은 주님의 은혜와 내가 체험한 기적을 모두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립니다. 다시 한번 목사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건강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세요! 2009년 10월 2일 한미 올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님을 비롯한 후원자님들께. 몇 년째 이렇게 저에게 보살핌과 방조, 지지를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도와주신대 대해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이 글을 썼습니다. 별이 반짝일 수 있는 건 밤하늘의 어둠이 받쳐주기 때문이고, 꽃이 그처럼 화려할 수 있는 건 그를 받쳐주는 푸른 잎이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가 오늘처럼 이렇게 환희 웃으며 희망찬 래일을 위해 근심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건 바로 후원자님들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4살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비록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나는 한번도 낙심하고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후원자님들이 나한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으니까요. 그 손을 꼭 잡고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 손길이 바로 내가 전진하는 동력이니깐요. 여기에 많은 친구들도 아마 저와 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후원자님들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학습을 열심히 하고 몸과 마음을 잘 단련하여 후원자님들처럼 장래에 우리처럼 가련한 애들을 많이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희망이란 두 글자를 배에 싣고 인내라는 두 글자로 노를 저으며 실패라는 두 글자가 앞을 가려도 인내라는 두 글자를 알 때까지 성공에로 다가가겠습니다. 그 길에서 후원자님들이 저의 받침돌이 되여 줘서 참 고맙습니다. 저의 꿈은 선생님이 되어서 나와 흡사한 경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엄마다운 사랑을 베풀면서 그들을 아껴주고 관심해 주고 싶습니다. 끝으로 후원자님들과 이 세상의 마음씨 고운 분들이 매일 매일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0월 14일 안도 박청 올림”

저는 또한 “악의 축” 이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두 번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첫 번 방문은 2003년 7월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50도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투성이 속을 걷고 달리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한국교회가 세워준 3개 학교의 개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지고 간 학용품 선물 가방들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수 많은 아프간 어린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학교 하나만 더 지어줄 수 없느냐고 나에게 다가와서 간청하는 압둘라우 장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아프간을 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강변교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일억 수천만 원의 헌금으로 2년 후에 아프가니스탄의 쿤두스 지역 무랃취흐 마을에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었고 이 학교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황폐한 땅 아프간에 사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서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2005년 12월 15일 밤 꽉 막힌 타직 국경과 과 아프간의 국경을 불법으로 혼자서 뛰어넘어 “지옥”과도 같은 아프간으로 갔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16일 아침 10시 무랃취흐 학교 준공식을 거행했습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무슬렘 지도자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 길게 서서 우리 일행을 열렬하게 환호했습니다. 10여 미터를 지날 때 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우리들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이윽고 준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무슬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주지사와 교육감등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내용의 환영사였습니다. 아프간 어린이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한국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400여명 학생들에게 Korean Church 라는 글이 인쇄된 가방과 티셔츠와 학용품 선물을 나눠주었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가난의 빛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귀엽고 예쁜 얼굴들에 행복한 웃음들이 꽃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손길” 앞에는 정치적인 이념도 종교적인 이념도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귀로 온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를 온 몸으로 보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또한 북한을 몇 번 방면하면서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1999년 1월 19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의 종교지도자들 7명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종교 지도자들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고, 2002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다시 북한을 방문하여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997년 4월 3일에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이 힘을 합해서 강원도의 감자 1690톤을 99대에 트럭에 실어 북한으로 보냈고, 2010년 8월 27일에는 한국의 종교지도자들 9명이 밀가루 300톤을 13대의 트럭에 싣고 개성으로 가서 북한의 민화협 실무자들에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밀가루를 가지고 북으로 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대북 폐쇄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통일부의 실무자들과 여러 번 접촉하면서 방북을 허락해 주기를 간절하고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방북 예정 며칠 전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방북을 허락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다음날 아침 통일부의 서 호 국장과 40여분 동안 전화로 비판과 충고가 담긴 아주 강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평생 그렇게 강하고 비판적인 어조로 정부 당국자와 대화를 나눈 일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동기로 방북을 추진해 온 종교인들의 방북을 불허하는 것이 통일부의 반응이냐?” “통일부가 반 통일부냐?” “이 놈의 정부와는 상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꾸고 빨리 방북을 허락하도록 하라!” 는 등 아주 강한 어조로 비판과 충고의 말을 쏟아놓았습니다. 4 시간 후 서 호 국장으로부터 전회가 걸려왔습니다. 밀가루 300 톤을 가지고 방북을 하도록 허락한다는 통보였습니다. 저는 급히 우리 종교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결국 방북 허락을 받은 8월 25일 이틀 후인 8월 27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의 종교인들 9명(김대선 교무, 김명혁 목사, 김훈일 신부, 박경조 주교, 박남수 선도사, 박종화 목사, 법 륜 스님, 이정익 목사, 인명진 목사)이 방북의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25톤 트럭 13대가 실은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으로 가서 개성시내 봉동역 하차장에 하역하여 북측 “민화협” 실무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북측 “민화협” 실무자들은 마음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의식적으로 남측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비판과 분노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곳 여기 저기서 만난 북측의 군부 지도들이 제 옆으로 다가와서 어떻게 이런 어려운 일을 했냐고 물었고 다음에는 언제 다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종교인들은 몇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남북간에 현존하는 불신과 대결의 골이 깊은 것을 실감하며 서글픈 고민에 빠졌는데 그 서글픈 고민은 서울에 도착한 늦은 밤까지 우리 모두의 가슴을 가득 메웠다. “어떻게 하면 남북에 가로놓여있는 불신과 대결의 골을 메울 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들의 고민이었고 결국 이것은 우리 종교인들과 국민들과 정부가 풀어가야 할 중대한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쓴 글 하나를 읽어드리므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주님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한 평생 나를 향하신 주님의 생각과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많은지! 실로 모래알보다 더 많은 주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나의 가슴에 눈물을 자아낸다. 사랑하고 싶어라.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는 요사이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어린이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귀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 저들의 얼굴과 마음과 영혼 속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의 흔적을 보기 때문이다. 저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어라. 무슬렘도 공산주의자도 상관이 없다.
저들은 이슬람이나 공산주의 라는 불행한 유산에 쌓여있는 가련한 영혼들일 따름이다. 사랑하고 싶어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 나의 맘 나의 몸 나의 정성 다 쏟아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어라.”(2007년 1월 3일 아침 교회로 운전하며 오는 차 속에서 쓴 글)





“부족한 죄인에게 사랑과 은혜를 쏟아 부어주신 신앙의 선배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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