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무언가를 찾으러 책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막상 책장 앞에 서는 순간, 무엇 때문에 그 쪽으로 왔는지를 그만 까맣게 까먹고 말았습니다.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책장 앞에 선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이렇듯 언제부터인지, 설교 도중, 인용해야할 책제목이나 저자 또는 출판사의 이름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버벅대는 일도 차츰 늘어나고 있고, 어떤 때는 교우들의 익숙한 성과 이름도 까맣게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습니다. 그동안에는 아내가 꼬박꼬박 잘도 귀띔해 주곤 했는데 요즈음은 아내조차, 갑자기 물어보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똑같이 겸연쩍어합니다. 어느 겨울날 성서유니온선교회 성경강론 차 나가는 길에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집사님을 태워드리마 약속하고 아파트 앞 공중전화박스 앞에 서 계시라고 당부해 놓고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에 그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적도 있습니다. 약속 시간 안에 선교회 사무실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생각하나로 열심히 차를 몰아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한데서 내내 기다리고 있을 집사님 생각이 나 황급히 약속장소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성경 공부하러 모인 분들에게 본뜻과 달리 큰 실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지나치게 심해지는 건망증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너나없이 치매는 결코 아니니 그냥 그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시라는 별 위안이 안 되는 조언만 해 줄 뿐입니다. 한 술 더 떠서,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지극히 정상이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입니다. 며칠 전, 병문안 차 예수병원에 가서 잠시 복도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7순이나 8순쯤으로 되어 보이는 노부부를 보았습니다. 투병중인 할머니를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가 부축하여 병원 복도를 걸어가시는데, 늙은 아내를 부축하시는 할아버지도 젊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할 정도로 힘이 부쳐 보였습니다. 아내된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안고 지극 정성으로 부축하여 진찰실로 가시는데, 양 무릎 사이가 크게 벙글어져 어기적거리며 느릿하게 걸음을 떼 놓으시는 두 분의 자세를 어디서 참 많이 본 듯했습니다. 어디서 봤을까 한참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분들의 걸음새가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들 몸짓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늙으면 아이 된다는 말이 비단 정신과 생각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총명이 조금씩 사라지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육신의 몸가짐과 걸음걸이가 어린 시절로 되닮아가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할 준비를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날로 심해지는 건망증도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져가 봤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차피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 다 버리고, 오래 남겨둘 따스한 사랑 하나만 고이 간직하고 이 땅을 떠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5. 9. 22.)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