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월드컵 도전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한 획을 그었던 ‘2002 한일월드컵대회’가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4년이 흘러 ‘2006 독일월드컵대회’가 열렸습니다. 2002한일월드컵대회 4강팀답지 않게 16강 통과가 매우 불투명해 보였던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원정경기 사상 첫 승리를 아프리카의 강호 토고를 상대로 얻어냈습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뚜껑까지 덮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 8천명의 관중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마솥 찜통이나 다름없는 악조건 속에서 무난히 1승을 거두어 승점 3점을 챙겼습니다. 막상 이기고 나니, 느긋해진 나머지 경기의 흐름이나 과정 그리고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찜통 더위 속에서 최선을 다했을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 축하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고, 아울러 아프리카 대표로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여 첫 패전의 아픔을 겪은 토고대표단 선수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가대항 프로축구경기인 월드컵은 세계적인 스포츠 마케팅의 거대한 시장으로서, 선수 개인이나 그 선수가 대표하는 나라들이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흥미로운 잔치마당입니다.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나 국가는 본선에 진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히 큰 영광과 자부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본선무대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주목을 받는 팀이나 선수는 곧바로 빛나는 명예와 돈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에 대회의 거의 모든 시합은 늘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그런가하면 만에 하나 작은 실수라도 해서 승패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면 국민들과 열혈팬들로부터 순식간에 역적으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수비수로 출전했던 에스코바르 선수는 자살골 때문에 대회가 끝난 얼마 후 열혈팬의 권총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당시 콜롬비아 대표팀은 축구황제 펠레로부터 월드컵 우승후보 0순위로 지목을 받고 있던 강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예선에서 지난 대회 준우승 팀이었던 아르헨티나를 5:0으로 대파할 정도의 눈부신 공격력을 갖고 있었고 세계적인 명장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우승후보 콜롬비아는 본선 조별예선에서 1승 2패의 초라한 전적으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대회 후 열성 팬들의 협박이 두려운 나머지 마투라나 감독도 에콰도르로 망명하고 말았습니다.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지구촌 축구잔치에 한번쯤 열광하는 것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시합의 내용이 어떻든 우리 팀이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씁쓸한 것,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축구시합은 시합이지 전쟁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국가주의와 스포츠가 함부로 결합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수많은 경기 중에 한두 경기의 승패에 따라 한창 때의 젊은 선수들을 애국자와 매국노의 아슬아슬한 갈림길에 세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록 결과가 좀 나빠도, 경기의 과정과 내용이 알차면 열심히 땀흘리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세계적인 수준의 멋진 경기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 6. 15.)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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