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아이의 대학졸업식장에 나갈 채비를 하다가, 느닷없이 남은 세월을 골똘하게 셈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조막 만한 코흘리개의 눈에 그토록 널찍해 보이던 모교 교정이 나이 먹은 뒤에 보면 참 조그맣게 느껴지듯이, 나이를 셈하는 버릇 또한 늘 자기 중심적인 자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온 세상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뿐이어서 한두 학년만 높아도 선배가 하늘처럼 커 보이곤 했는데, 몇 해전에 얼떨결에 오십대 문턱을 슬그머니 넘은 요즈음에는 가는 곳마다 저보다 나이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꿈처럼 아득하게만 보이던 그 많은 나이를 먹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눈가의 잔주름을 보며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아버님의 회갑 잔치 때 큰자식으로서 까닭 없이 마음 한 쪽이 축축해 오던 기억이 여태 생생합니다. 부모님 다 강건하시고, 형제들 탈 없이 잘들 일하고 있고,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무슨 몹쓸 짓을 하지 않고, 온 가족이 오순도순 착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한없었으면서도, 멀리서 가까이서 찾아오신 축하객들을 맞이하는 틈틈이 아버님 얼굴에 패인 주름살에 자꾸만 눈이 갔고,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아버님과 함께할 남은 세월을 어림짐작해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잔치는 가슴저리는 서글픔의 그림자가 악착같이 뒤따른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삶의 자리가 각기 달라 일년에 한두 번 어쩌다 근근히 만나는 친구들 입에서 벌써 사위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좀 일찍 결혼한 몇몇 친구들은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다는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산부인과 분만실 앞에서 갓 태어난 큰딸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목이 메어 얼떨떨하던 느낌과는 또 다른 큰 충격으로 다가올 ‘할아버지’라는 이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큰딸아이의 대학졸업식을 코앞에 두고, 아내를 만나 자식들을 낳고 정말 숨가쁘게 살아온 이십몇 년의 세월을 찬찬히 되짚어 보다가 이내 또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남은 세월을 셈해보고 있었나 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시간, 아이들 돌보는 시간, 집안 일 정리하는 시간을 빼면 부부가 1:1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은 불과 몇 분이 채 안 될 것이므로, 앞으로 함께 10년 20년을 더 산대도 그 시간을 똘똘 뭉쳐 놓으면 한두 달도 채 안 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보듬어 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그 금쪽같은 시간에 아옹다옹 다투는 것보다 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지 싶습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시간을 내어 남은 시간을 한 번 헤아려 보십시오. 가슴 저미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기름으로 까물거리는 사랑의 불꽃을 다시 뜨겁게 일궈 보십시오. (2006. 2. 23.)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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