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마당에서 자주 나오는 말 가운데, ‘지름북’이란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기름북’이라는 말인데, 전라도 사투리로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는 까닭에 ‘지름북’이 된 것입니다. 소리북을 공력을 쌓아가다 말고 아주 능숙한 명고수가 되기 전에 북 공부를 중단한 까닭에, 북을 전혀 못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연마당에서 마음놓고 소리꾼과 호흡을 맞출 만한 탄탄한 공력도 못 갖춘 경우,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써먹자니 문제가 많은 북솜씨를 가리킵니다. 기름을 발라 잘 손질하면 제법 빤질빤질한 모양이 나듯 북가락의 모양은 제법 그럴싸한데 그 모양에 걸맞은 공력이 전혀 없어 소리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함께 공연하기 몹시 힘든 경우를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일컫는 말입니다.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릴 때 얼마나 뛰어난 기술과 얼마나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지 아실 것입니다. 그 거대한 몸집의 쇳덩어리를 궤도에 올리기 위해 쏘아 올렸는데 지구 궤도에 미처 오르기 전에 그만 추진 로켓이 멈춰버렸다고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수직으로 대기권을 향해 쏜살같이 올라가다 말고 추진 로켓이 그만 멈춰 서 버리면 올라간 그 고도에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지구 중력에 의해 맨땅으로 곤두박질하게 되고, 그럴 경우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인공위성 제작비와 소중한 인재를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이 지상 어느 지점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5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때로는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몹시 고단하고 가슴 아픈 삶의 구비를 지나오면서, 삶의 절대 원칙으로 제가 믿고 따르는 성경의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세상의 흐름을 보는 시각을 조금씩 정교하게 가다듬는 은혜를 많이 누렸습니다. 지구촌의 돌아가는 모습, 나라 안의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흐름, 좁게는 제 고향 전라북도민들의 만성 속앓이, 제가 속한 몇몇 공동체의 심각한 고민들을 보며, 그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소용돌이의 밑바닥 중심에 저 자신을 포함해서 ‘지름북’들이 너무 많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거미줄처럼 동이고 있는 공적인 약속과 사사로운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고, 시작과 끝이 일치하도록 한결같은 자세를 지니고 사는 이들이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미 ‘지름북’이 되었고,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어줍잖은 자부심으로 미화된 무서운 교만이 굳건하게 똬리 틀고 있음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애써 잡은 인생의 북채를 놓기도 싫고 그렇다고 멈춰선 공력을 다시 궤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2006년 새해를 시작한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달 12월이 코앞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올 한 해를 한번 솔직하게 돌아보십시오. 처음 다짐, 처음 약속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켜냈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지름북’이 되지는 않았는지, 내년에도 또 그렇게 ‘지름북’으로 살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스스로를 평가해 보십시오. (2006. 11. 30.)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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