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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열린문교회 담임목사. 시인. 수필가. 생명평화전북기독인연대 공동대표. 전북학복협 공동대표)

  제목 : 아내가 닦아준 구두




주일 아침, 교회당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나서는 길, 아파트 현관 앞에 아내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저의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워낙 야무지게 닦아놓은 모양새라 조심조심 발을 밀어 넣고 집을 나섭니다. 현관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는 제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고 괜히 기분이 들썩거립니다. 아내와 이른바 맞선이라는 것을 한 번 보고, 만난 지 3주만에 번갯불에 콩 튀듯 얼떨떨한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지내온 세월이 벌써 햇수로 25년, 20대 후반의 처녀 총각이 50대가 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4남매가 벌써 훌쩍 자라버렸습니다. 일년에 한두 번 만나는 대학동기생 모임에 가서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사위 자랑 며느리 자랑을 슬그머니 엿듣기만 하며 지냈는데, 이제는 제 아이들도 어느 새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신혼 초, 쑥맥들끼리 만나 알콩달콩 서로에게 길드느라 늘그막에 함께 되새길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만, 솔직히 아내와 저는 다른 점이 퍽 많습니다. 추위를 저보다 훨씬 더 많이 타는 아내와 실내온도를 맞추는 일에서부터, 짠 음식을 거의 못 먹는 아내와 조금 짭짤해야 음식맛을 느끼는 제가 함께 살아오는 동안 어찌 크고 작은 불편이 없었겠습니까? 겨울 밤에 화장실에다녀올 때마다 아내는 보일러 온도를 살짝 올려놓고, 저는 기회만 닿으면 다시 온도를 후다닥 낮췄습니다. 물론 하룻밤 새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조금 높은 제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여지껏 살아왔습니다. 무슨 일 한 가지에 매달리면 그 일이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마무리되기 전에는 잠도 잘 안자고 다른 일을 전혀 못하는 저와는 달리, 아내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참 잘도 해냅니다. 온갖 자료와 책들을 한껏 늘어놓아야만 일을 제대로 하는 저에 비해 아내는 늘 정갈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아내가 창문을 활짝 다 열어제껴 놓고 청소를 시작하면, 저는 두툼한 점퍼를 얼른 챙겨 둘러 입고는 아내가 든 걸레와 청소기가 책상 아래 제 발밑을 지나갈 때 간신히 발을 들어 주는 것이 고작입니다. 몸이 좀 아프거나 피곤한 날 청소를 할 때마다 좀 안 도와 주는 것을 섭섭해하는 눈치가 보이면 저는 늘 "좀 지저분하게 살자"며 미안한 감정을 말도 안 되는 너스레로 쓸어 담곤 합니다.

  다소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저는 너무 급격한 변화를 별로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매일 갈아 신는 양말은 빼고, 옷도 한 번 입으면 그 옷 한 벌로 한 계절을 그냥 보냅니다. 신발도 한 켤레 사면 그것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구두약 한 번 발라 주지 않고 그냥 끝까지 신고 다닙니다. 자동차도 '핸들과 바퀴만 있고 그냥 굴러다니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세차도 자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내는 늘, "당신에게 걸리는 물건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며 밉지 않게 눈을 흘기곤 합니다. 그래도 4반세기를 함께 지내오는 동안 한두 번 서로 의견 차이로 며칠 마음 고생을 한 것을 빼고는 지금껏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예배당으로 가는 길, 아내가 정성껏 닦아준 낡은 구두의 반짝임을 내려다 보며 작은 것에서 우러나는 따스한 사랑을 다시 배웁니다. 아무리 바빠도 1월이 가기 전에, 아내랑 좋은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가야겠습니다. (2008. 01.)




만남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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