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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열린문교회 담임목사. 시인. 수필가. 생명평화전북기독인연대 공동대표. 전북학복협 공동대표)

  제목 : 만남의 그늘




재작년 겨울 어느 날, 교회사무실로 저를 찾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고 보니 대학시절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1년 선배였습니다.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어서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지켜본 선배는, 나름대로 자기관리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누구 앞에서나 자신감이 넘쳐 보여 그 선배에 대한 제 나름의 호감은 간직하고 있었지만 사사로이 만나 깊은 교제를 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선배가 대학을 졸업한 뒤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로라도 통화가 된 것이 제 속마음으로는 우선 퍽 기뻤습니다. 그간의 안부를 묻는데, 뜻밖에도 선배는 저의 이력과 최근 상황을 마치 곁에서 지켜본 듯이 줄줄이 꿰며 다소 과장된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그 선배의 지난 30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1년 후배라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광우야, 나다.”로 시작해서 친하다는 것을 과장해서 강조하기 위해 줄곧 반말로 대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단 하루 볕이라도 선배는 선배니까 제 쪽에서는 깍듯하게 공대하며 통화를 했습니다. 지극히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저에 대한 공치사를 몇 마디 더 하더니 선배는 이내 본론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인 즉, 자기 친 형님이 이번에 어느 전문분야의 시사월간지를 창간하게 되었는데 그 잡지를 1년 간만 구독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부탁이지, “자네 동기생 가운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까지 곁들이며 거의 강요하다시피 조르는 바람에, 30여 년 전 대학시절의 선배에 대한 좋았던 느낌을 차마 어쩌지 못해 결국은 “딱 1년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그리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 주소나 신상정보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새삼 메모할 필요도 없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그 날 오후 내내, 하염없이 속이 아려왔습니다. 차라리 그런 통화가 없었으면 선배에 대해 그럭저럭 괜찮은 이미지를 가지고 살았을 터인데 그 좋은 대학시절의 추억이 변색되고 선배에 대해 찜찜한 이미지가 뜻밖에 생긴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1년 간 다달이 별 관심도 없는 잡지가 배달될 때마다 그 날의 아쉬움이 되살아났습니다. 약속한 1년이 끝나갈 무렵 그 잡지사의 영업담당 직원으로부터 구독 연장을 촉구하는 전화가 한 통 또 걸려왔습니다. 구독신청 당시의 상황을 점잖게 설명하고 그만 구독하겠다고 했더니 아주 살벌한 태도로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돈이 왕노릇하는 세상이라지만, 사람과 사람의 소중한 만남, 그렇게 해서 알게된 친지들의 소중한 정보까지도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철저하게 이해타산의 멍석 위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세상의 흐름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인간관계의 모든 매듭은,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가슴으로 맺어져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007. 08. 30.)


CBS전북 방송, 이광우 목사의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아내가 닦아준 구두
빈껍데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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