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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중앙교회
- 신창리의 2층 양옥교회-
하나의 로동자구와 56개의 동, 14개의 리를 품고 있으며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인 함흥은 중요한 도시이고 큰 도시이다.
‘함경도’라는 이름은 함흥에서 ‘함’자를 따고, 경성(鏡城)에서 ‘경’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함흥은 1960년대에는 도급(道級)인 직할시였다.
▣함흥 기독교기관들의 중심에 있던 교회▣
함흥은 기독교가 비교적 일찍 들어갔고, 대단히 왕성했던 곳으로서. 한국에서 서울을 제외하고 YMCA운동이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 함흥이다.
처음에는 미 북장로회가 함흥선교에 착수했는데 얼마 뒤에 함경도 전체가 캐나다장로회의 선교구역이 되었다
함흥중앙교회는 1896년 8월 1일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함흥읍교회’라고 했다가 1907년에 신창리에 2층 양옥 큰 교회당을 짓고서 ‘신창리(新昌理)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6년에 이 교회에서 함흥남부교회가 분립되면서 함흥중앙교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함흥중앙교회는 북장로교가 함흥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스왈른(W.L. Swallen: 蘇安論) 선교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내 죄 회개하고”(326장: 통일찬송가 368장) 작사자로 잘 알려진 스왈른 선교사는 이기풍(李基豊) 목사(뒤에 제주도 첫 선교사가 돰)가 회심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분으로, 원산을 근거지로 해서 이기풍 조사, 전군보(田君甫) 조사와 함께 함흥에 와서 전도했다.
함흥에 만세교라는 잘 알려진 다리가 있는데 만세교 부근에서 전도할 때 신창희(申昌熙)라는 분의 부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전도하고, 남편 신창희는 친구들에게 전도해서 남문 밖에 교회가 세워졌다.
「장로회 사기(史記)」에는 “신창희의 부인은 빌립보 성의 루디아에 비교할만한 인물이다.”라고 적혀 있다.
함흥에는 영생학교(永生學校)와 영생여학교, 남녀성경학원, 제혜병원, YMCA 등 기독교기관이 여럿 있었는데 이런 기관들은 모두 함흥중앙교회를 중심으로 설립되거나 운영되었다.
함흥성경학원은 함흥중앙교회의 이전 예배당을 교사로 사용했다.
영생학교는 인재를 많이 배출한 교육기관인데,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 모금을 해서 1990년에 수원에 영생학교가 재개교했다.
▣3․1운동의 중심, 함흥헌병대 사건, 그리고 순교자 이학봉 목사님괴 유정철 목사님▣
함흥중앙교회는 함흥 3․1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많은 교인들이 옥고를 겪었으며,
일제 강점기말에는 ‘함흥헌병대사건(일명 함흥구국투쟁위원회사건)’을 겪었다.
교회에서 성탄축하예배를 드리면서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한 것을 트집 잡아 교역자와 지도자들이 많이 체포되고 구속되어 심한 고문을 받은 것이다.
그 때 일본 당국은 교회에서 출애굽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나중에는 출애굽기를 읽지 못하게 했다.
당시 부목이었던 김만제(金萬濟) 목사가 이 사건으로 감옥생활을 했다.
함흥중앙교회는 스왈른 선교사에 이어, 캐나다 장로교의 맥레(D.M. McRae: 馬具禮) 선교사가 오래 시무했다.
3․1 만세운동 때 일본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소방기구인 쇠갈퀴를 마구 휘둘렀는데 이 광경을 본 맥레 선교사는 경찰서장에게 “학생들의 머리에 불이 붙었느냐? 왜 쇠갈퀴를 휘두르냐?”고 항의했다.
1910년대 초기부터 한국인 교역자들이 담임했는데, 김종섭(金鍾燮)․박치형(朴致衡)․‘관북지방 믿음의 아버지’로 알려진 전계은(全啓殷)․김중석(金仲錫)․이학봉(李學鳳)․유정철(柳禎哲) 목사가 이어가며 시무했다.
이 가운데 이학봉 목사는,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낸 성악가 이인범(李仁範) 교수의 아버지이며, 「순교자」라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가 김은국(金恩國)씨의 외할아버지인데, 해방 후 공산정권에 의해 순교 당했다.
류정철 목사는 원두막에서 함께 참외를 먹던 두 친구가 낙뢰로 그 자리에서 숨지는 것을 보고 협성신학교(현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들어간 분인데, 함흥중앙교회를 담임하다가 1943년 평양으로 옮겼다.
지난 번에 진남포중앙감리교회에 대해 말할 때(18번), ‘진남포중앙감리교회는 비석리에 있었는데 비석리에는 장로교회도 있었다.’고 했는데 류정철 목사는, 해방 후 비석리장로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가 순교당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원균(李元均) 목사가 진남포중앙교회를 담임했다.
함흥중앙교회의 옛 주소는 함흥부 주길정(住吉町)으로 되어 있다.
일본 당국이 신창리를 일본식 이름인 ‘주길정’으로 바꾼 것인데 이 지역은 현재 함흥시 서문동으로서, 성천강에 있는 성천교와 철로의 오른쪽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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