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민족주의」 발제에 대한 종합적 논평
                  



                                                                                                 김 영 한 교수
                       (한복협신학위원장, 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설립원장)




머리말
“기독교와 민족주의”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발표자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과 민족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이며 복음주의적 견해이다. 성경은 민족애, 민족 정신을 말하고 있으나 민족주의를 가르쳐주고 있지 않다. 민족애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듯 타민족도 존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일  수 있다. 이에 반해 민족주의는 대체적으로 배타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타민족에 대한 공격적 성격을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정의(justitia omnibus)일 수 없고, 따라서 보편적 가치일 수 없다. 한경직은 1957년 3월 3일에 행한 ‘성서적 애국심’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민족과 국가가 아무리 귀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상입니다. 애국심이 잘못되어서 변태적으로 발전되게 되면 독재주의가 생기는 것이고 배타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18세기 이후 민족주의의 팽창은 20세기에 일어난 두차례 세계대전의 원인이었고, 20세기 전반기의 민족주의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전체주의적 파시즘체제로 변질되어갔다. 지나간 역사에서 얻어지는 분명한 사실은 민족주의는 보편적 가치일 수 없고, 민족을 이데올로기화 할 때는 폭력성을 동반한다. 독일의 나치스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facists),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자기 민족을 절대화함으로서 타 민족에 대해 폭력을 정당화했다. 20세기 말 동유럽의 공산주의의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의 민족분쟁도 같은 맥락이다.

1) 주기철의 신본주의 애국심

이상규 교수의 주기철 이해는 많은 자료를 가지고 깊은 통찰을 제시해 주고 있다. 소양 주기철은 민족에 대한 관심을 경시하지 않았으나,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한 것으로 드러난다. 소양 또한 민족운동의 정신적 보루였던 오산학교 졸업생으로써 민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깊었다. 소양은 민족독립이 교회가 수행해야 할 주된 과제이거나 사명일 수 없다고 인식했다. “우리 산정재(산정현) 교회에서도 첫째(정치운동 하려는 자), 둘째에 속한 사람(도덕생활하려는 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이제라도 이 자리를 나가주시오.” 주기철은 ‘참된 믿음이 곧 애국의 길’이라고 믿었고, 신앙행위가 곧 애국의 길이었을 뿐이다. 주기철의 목회와 설교, 신사참배 거부가 민족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임을 암시한 일이 단 한 번도 없다. 도리어 그의 신념체계, 행동양식을 결정했던 것은 신앙적 동기였다.

평가: 논자는 이상규 교수의 견해, “주기철의 신사참배 거부 행위는 민족주의적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신앙적 동기였다”고 보는 관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가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일본 국민이라는 점 자체를 부인하려하지 않았다”는 태도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다소 남강이나 고당보다 민족정신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주기철이 “민족의식과 민족주의적인 시대정신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극적 태도가 아니었나 보아진다. 구약에서 다니엘이나 느헤미나같은 지도자들은 민족주의자는 아니었으나 민족정신이 투철했다. 모르드게와 에스더 같은 인물은 민족정신이 투철하였다.

2) 한경직의 기독교적 애국정신

임희국 교수는 한경직에 대한 최근 저작에 근거하여 확실한 한경직의 민족정신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한경직의 민족의식은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싹이 텄고, 그의 민족사랑은 오산학교 재학시절 학교의 교육이념에서 배웠다. “나라가 없으면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지켜야 한다.” 그의 스승들은 투철한 민족애를 가진  이승훈과 조만식이었다. 한경직은 이승훈의 고결한 인격과 순수한 애국심을 본받고자 하였다. 조만식이 오산학교 교장으로서 그가 한국 사람으로 살다가 죽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면서 한경직은 조만식으로부터 민족정신을 배웠다. 그는 ”민족의 발전과 진보를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일본 제국주의에서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한경직은 “건국과 기독교”란 제목(1947.12.2.)의 설교에서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는 반드시 기독교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한경직 목사는 1957년 3월 3일에 행한 ‘성서적 애국심’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예수님도 애국자이십니다” 라고 말하여 나라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성서적 애국심이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서적 애국심은 혹 우리 사회에서 가끔 듣는 민족지상주의나 국가지상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애국심은 민족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귀하지마는 국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평가: 논자는 임희국 교수의 견해, “한경직 목사의 애국애족(愛國愛族) 정신은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어진 적이 없었고 기독교 신앙정신으로 민족을 사랑하며 그 사랑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실천하도록 가르쳤다”는 해석에 동의한다. 한경직의 경우는 민족애와 신앙심이 균형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다. 한경직은 무통장, 무부동산 등 무소유의 삶을 사셨고, 교회권력을 자녀들에게 넘기지 않았다는데 그의 위대성이 있다. 그러나 한경직은 대형교회주의로 나가면서 작은교회 운동에 소홀히 한 것과 너무 포용적이었기 때문에 사회의 잘못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데 그의 약점이 있을 수 있다.

3) 강원룡의 에큐메니칼 민족주의

연규홍 교수는  『강원용 전집』에 근거하여 사실에 근거한 강원용 해석을 제시해주었다. 일제하의 고난 받는 민족의 구성원이었던 강원용은 민족의 해방을 바라던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그는 민족의 해방보다 더 큰 인간의 해방을 바라는 에큐메니스트가 되었다. 이러한 강원용 목사의 민족주의를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라고 특징지우고 있다.
첫째, 강원용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분단을 강요당하고 또 그 분단을 현실에서 짊어져야하는 민중의 고난 속에서 민족주의를 찾았다.
둘째, 강원용의 통일은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절충한 통합체제가 아닌 그와 다른 서양문명의 물질주의를 넘어서는 인간화를 지향하는 민족국가형성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셋째, 강원용은 민족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민주화가 곧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평화통일의 유일한 방안이라고 보았다.

평가: 논자는 “강원용이 ‘민족지상주의자나 민족우월주의자’가 아니었다” 라는 연규홍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사이의 대립과 갈등에서 고난 받는 민중에 관심을 가진 강원용의 민족주의는 인간화와 평화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라는 연규홍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강원용은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세계와 공존, 번영하는 통일을 이루는 민족주의만이 곧 그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확고히 믿었다.

강원룡 목사에 있어서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는 배타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시대를 여는 민족의 지도이념”이었다. 그는 침략적 민족주의나 저항적 민족주의를 신봉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시각에서 볼 때 강원용 목사는 기독교 신앙이 가진 사회적 차원을 너무 강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길선주나 손양원 등이 강조한 하나님 중심이 사회적 관심 때문에 약화되지나 않았나 생각된다. “에큐메니칼 민족주의”란 용어 사용에 있어서 강원용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점은 인정하나 “에큐메니칼”이란 용어는 WCC참여자들이 사용하는 독점용어가 될 수 없고 교회의 연합(지구상 그리스도 교회의 연합)이라는 운동을 주도한 자들에게 붙이는 것이라면 민중, 인간화와 펑화를 사랑한 인도주의적 민족주의라는 명칭을 그에게 붙이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가 제안해 본다.

맺음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김명혁 박사가 그의 글 “신앙의 선배들에게서 배웁시다”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고난과 희생과 사랑과 긍정과 관용의 삶”(이승훈, 조만식)을 살았고 “고난과 온유와 겸손과 함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섬김의 삶”(주기철, 손양원)을 살았고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삶”(한경직), “민중, 인간화, 평화의 삶”(강원용)을 살았다. 앞서 가신 신앙의 선배 6분 목사님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훌륭한 점은 오늘날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돈, 명예와 권력 같은 세속적 가치보다는 하나님 영광, 민족 사랑과 민족을 위한 희생, 섬김, 온유와 겸손 같은 기독교적 가치를 더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후배들은 선배들의 위대한 덕과 정신을 본받으면서 저들의 남겨준 위대한 신앙과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