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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12.5.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책임- 최 이 우 목사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책임


종교교회 담임목사  최이우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내 사무실에 낯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박원순 서울시장후보가 23일 주일 4부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합니다.” 선거를 3일을 앞둔 상황에서 이 일은 민감한 일임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교회에 예배하러 오겠다는 데 누가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다만 표를 의식할 수 있는 그분의 방문을 교회적인차원에서 어떻게 예우해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우리교회는 특별한 손님이 예배에 참여하면 광고시간에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고 교인들이 주보를 흔들어 환영하는 예를 갖추는 전례가 있다. 그래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일 2부 예배가 끝나자 31명의 장로님을 대표하여 장로회장님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말했다. “목사님, 한 사람에게 불편한 얘기를 들으시는 것이 많은 교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결국 박후보는 참모진들과 함께 4부 예배를 조용히 드리고 예배 후에 나를 만나고 돌아가셨다.
  교회에서 정치에 관한 말을 한다든지 특정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하여 거론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까닭은 교인들의 구성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교우들이 함께 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의 발언이 상당히 정제된 언어로 한다고 해도 객관성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선교초기의 기독교의 영향력을 말하곤 한다. 이를테면 3.1운동과 건국시기의 기독교지도자들의 참여와 영향력이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은 한국의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된 지 불과 3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민족대표33인 중에 기독교지도자들이 16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뜻한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였을까? 이것은 1885년을 기점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복음과 함께 민족적 희망을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희망의 종교인 기독교에 뜻있는 인사들이 다수 입문하므로 기독교의 지도력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고 사회, 정치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장로인 이승만대통령을 중심으로 건국이 되면서 다수의 기독교지도자들이 정계에 진출하였고, 기독교적인 문화를 한국사회와 정치에 접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 가운데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다수가 미국유학을 다녀와 선진국 문물을 경험하였고, 실제로 교회목회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이 교회의 조직과 문화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해보면서 사회정치 지도자적인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건국국회 개회를 기도로 시작했던 것은 그런 사실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는 소위 군사문화로 확연하게 바뀌게 되었다. 모든 시스템이 군대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계까지도 군인출신들이 장악하였고, 심지어 1980년대에는 육사출신의 장교들에게 군수, 시장이 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질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의 조직문화를 능가할만한 제도나 시스템이 없었다. 그 무렵 많은 인재들이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각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기업의 시스템과 문화가 한국의 상황을 또 한 번 바꾸어 놓았다. 기업의 시스템과 문화가 군대문화를 능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아래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소위 운동권이 세력화되고 있었다. 이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대거 정치, 사회, 경제계로 약진에 약진을 거듭하였고 급기야 거대한 세력으로 형성되었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분열현상을 보면서 운동권세력도 그 방향성이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독교의 리더십의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본다.
  1. 개화초기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발휘되었던 기독교중심의 리더십이 정치권의 변화와 함께 군사문화화 되면서, 기독교의 리더십이 점차교회중심으로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70년부터 약20여 년간 교회 대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교회의 부흥이 경제의 발전과 민주화운동과 함께 경험되었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리더십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리더십은 부흥된 교회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권과 관계된 일들에 몰두하게 되므로 사회정치 문제에 소홀하게 된 것이다.
  2. 다른 하나는 교회의 대 부흥과 함께 거대해진 기독교의 힘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에 기독교가 힘을 하나로 뭉칠 경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거대한 세력이 되었고, 대한민국을 기독교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거센 저항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종교계는 종교계대로, 기독교의 세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 절명의 위기의식을 가지기에 충분했을 상황이다. 이 때 쯤 한국사회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강조하며 기독교지도자들을 교회 안으로 그 영향력을 제한시키려 하였고, 또한 기독교의 세력을 분리시켜서 스스로 대립, 경쟁하도록 함으로 그 힘을 상쇄하도록 유도되었을 수도 있다.
  3. 그리고 기독교가 세력화되는 것을 가장 싫어할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은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늘 기독교에 대하여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고 비판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기독교는 사방에서 맹공격을 받고 있는 샘이다. 그래서 그 동안 기독교는 스스로 보호하려는 절실한 요청 속에서 정치일선에 뛰어들기 위해 본격적인 시도를 해 온 것이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지지하는 세력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 것은 왜일까? 그 일에 앞장선 사람들은 절실한데 기독교인들은 왜 표를 주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기독교정당에 대한 공론화의 과정이 전혀 이루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단대표들이나 기독교지도자들 사이에도 단 한 번도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필요성을 단 한 번도 공론한 적이 없이 몇몇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해서 힘없이 끝내곤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기독교교인들은 기독교정당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독교정당을 만들고 앞장서서 뛰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기독정당이 만들어지고 비례대표로 추천된 인물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만한 충분한 인지도를 얻지 못한 인물들이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사회정치적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가 정치세력화 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를 묻고 싶다. 이 질문에 대하여는 그 동안 기독교가 받아온 불이익을 생각하면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기독교의 이익보다는 불필요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물론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역을 하시지는 않으셨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리하는 듯한 인상을 주셨지만 ‘너희는 세상의 소금, 빛이라’ 하신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가 세상의 변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자체가 당시 기득권의 세력에게는 상당한 도전과 위협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독교회의 정상적인 사역 속에는 정치적인 성향과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사회학에서는 종교의 기능을 사회 통합(social integration)을 가져오는 제사장적기능과 사회변형(social transformation)을 가져오는 예언자적기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 두 기능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기독교의 중요한 요소이다. 제사장적기능을 교회내의 목회적인 사역이라고 한다면 예언자적기능은 대 사회적인 목회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인 책임을 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기독교사회윤리”에서 박원기 교수는 기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을 7가지로 말하고 있다.
1. 가장 일반적인 단계는 교회가 정치적 행동이 생겨나게 하는 시대정신에 영향을 줌으로써 정치적 주장을 하는 단계이다. 인종차별정책이 기독교신앙과 위배된다고 주장한다거나 나치 치하의 독일교회의 ‘바르멘 선언’ 같은 것이다.
2. 특별문제에 대하여 교회 내 구성원들을 교육하는 단계이다. 핵전쟁을 반대하는 교육프로그램과 이를 이슈화 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3. 압력단체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대중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4.교회가 양심적이고 민주적인 특정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시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5.교회 자체가 정치적 정당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기독교민주당들의 존재가 여기에 속한다.
6.시민 불복종의 단계이다. 국가 정책이 기독교인의 의지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때 결단하고 행동하는 단계이다. 마틴 루터 킹이 이러한 예를 가장 잘 보여주었다.
7.가장 직접적이고 과격한 참여의 단계는 혁명이다. 이는 정치적 계약 개념을 전폭적으로 재구성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책임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기독교정당을 만들기 전에 신실한 기독교지도자들이 각 정당 안에서 기독교를 위한 입장을 충분히 대변해 주기를 기대해 보면 어떨까?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신앙훈련이 그런 차원에서 이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학교선생님들이 기독교신앙의 가치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거나, 기업인이 자신의 신앙의 가치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정치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가능할까? 이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봄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자기 개인의 신앙적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이 소속정당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정치인들은 소속정당의 정권창출의 힘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신앙의 자질이나 덕에 의존하기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정치세력화가 절실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과 지도자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하는 인식에 공감해왔다. 왜냐하면 아직도 기독교정당화의 인식이 기독교인들 사이에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표를 얻어내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도 정당의 비례대표에 당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된다. 몇 해 전에 모 이단종파에서 전국적인 후보를 내어 정치에 진입하려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하였다. 단 한 명의 당선도 시키지 못했을 뿐더러 비례대표한 사람도 건지지 못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물 안의 개구리의식에 집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는 그 세력이 상당하다고 인식을 했겠지만 국민적 인식은 거의 되어있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1.기독교정당의 당위성에 대한 공적인 논의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일에 명망 있는 기독교지도자들은 물론 정통기독교교단들과 기독교단체들이 뜻을 모아야 한다.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독교정당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내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몇몇 지도자들이 부화내동 하여 힘을 모운다고 할지라도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소 영웅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수준의 인식을 면하기 어렵다.
  2.기독교정당의 후보들은 전체그리스도인에게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덕망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일반 정당에서조차 아끼고 신뢰받는 인물이 기독교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제자를 양성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