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책임에 대하여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









이 발제에서 두 가지를 논의한다.
(1)우리는 누구인가? (2)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1. 교회와 기독교는 누구인가?

교회와 기독교라는 두 단어를 잠깐 정의하자. 두 단어를 사회적 시각에서 관찰하면, 교회는 성경을 기본 신조로 삼는 현상적이고 현실적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독교는 교회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드러나고 펼쳐지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기독교가 범위가 더 넓다. 기독교 안에는 교회도 있고 교계 단체들도 있다. 기독교적인 모든 운동과 다양한 삶의 모습도 들어있다. 이렇게 단어만 정의해도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연관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사회와 정치란 두 단어를 상식적으로 풀어보자. 사회는 사람이 살아가는 마당이다. 정치는, 넓게 보면, 그 마당에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사회가 ‘사람’이 사는 마당이니까 교회는 결코 사회와 무관할 수 없다. 당연하다. ‘사람 없이’ 교회가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교회보다 더 넓게 사회적 연관성을 갖는 개념인 기독교가 사회 정치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연관성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회와 기독교를 사회적 시각에서만 보면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것만 있으면 반쪽이다. 신학적 시각이 같이 있어야 비로소 온전하게 교회와 기독교를 알아차릴 수 있다. 신학적 시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바,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오셔서 머물며 일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으로 충만한 곳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 모임일 뿐 아니라 동시에 신적인 공동체다. 사회적인 시각에서 드러나는 교회와 기독교의 모습을 ‘사회 정치적인 연관성’이라고 한다면, 신학적인 시각에서 밝혀지는 모습은 ‘신앙고백적인 자기 정체성’이다.

교회가 사람 모임인데, 이 사람들은 특별하다. 사회 전체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불러내신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들이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다스리며 이끄신다고 믿으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 곧 나와 세상의 구세주로 고백하며, 하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영으로 내 삶의 일상에 현존하며 활동하신다고 믿는다. 이들은 이 땅에 사람 몸을 입고 실존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다.

일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현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을 갖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사회적인 소속뿐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도 갖는다. 말하자면 이중 국적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체의 생명을 갖고 사는 시간 동안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맡긴 일 말이다. 그 소명(召命)을 자기 사명(使命)으로 알고 순명(殉命)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2. 한국 교회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교회와 기독교를 대표해서 교회란 단어를 쓰겠다. 성경에는 교회를 표현하는 모형이 많다. 노아의 방주,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후손들, 다윗을 중심한 망명자들, 이스라엘 민족 특히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풍랑이 이는 바다에 떠 있는 배 …. 이 가운데 한국 교회에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 노아의 방주일 것이다. 교회를 표현하는 아주 귀한 모형이며 설명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것을 들어 교회를 설명하든 각 모형 또는 모델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역사 흐름에 존재했던 교회들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그 각각의 얼굴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필요했던 모습이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 교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복음이지만 복음이 입는 옷은 시대와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노아의 방주는 그런 모델 가운데 하나다. 노아의 방주 모델이 갖는 가장 큰 약점은 사회와 연관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아니, 약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다. 노아 홍수 사건에서 세상은 망하는 대상이니까 연관성이 있을 수 없다.

사회가 크게 혼란하고 심하게 타락했을 때, 그래서 현실 상황에서 도저히 어떤 갱신이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이고 복음을 끌어안고 생존하는 것이다. 이럴 때 노아의 방주는 참 좋은 모델이다. 박해와 순교를 각오하는 마가의 다락방 모델도 이런 때 필요하다. 말하자면 신앙고백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델이다.
반면, 한 사회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제나 정치 요인이 좋아지고, 도덕 정신적 상황이 건강해지면서 교육과 법조 요인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될 때는 노아의 방주 모델이나 순교 공동체 모델로는 복음을 전하기 힘들다.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 외에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인 발전 상황이 또 아주 중요하다. 한 사회의 인구 구성에서 그리스도인이 차지하는 비율 문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기독교 선교 초기에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소수자 집단에서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면 집단 자체가 사라진다. 역사적 현상으로 교회가 출발하던 초기에는 이런 모델이 강했다. 예수님도 사역의 마지막 부분에서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하시며 끝까지 견디라고 하셨다.
한국 교회가 초기에 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지키며 전도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중심한 자기 정체성 모델이 강해서였다. 암울한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견디어낼 수 있게 한 출애굽 모델의 신앙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점점 늘어가면서 교회는 다수자 집단이 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신앙고백적인 자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해서 사회 정치적인 연관성을 확대해야 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현상들에 대해서 전에는 책임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교회의 책임임을 깨닫는 시각이 필요하다. 성도들에게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와 세상이 장차 망할 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찾아올 마당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천로역정 모델이 아니라 주기도문 모델인 셈이다.

한국 교회는 소수자 집단에서 다수자 집단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이런 인식의 깨달음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인구 구성 비율에서 이미 다수자 집단이 되었는데도 생각은 여전히 소수자 집단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과 이에 대한 원색적인 자기 정체성은 여전히 강한데 법치를 근간으로 한 민주주의, 상생을 겨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인간의 존엄성에 뿌리를 둔 인도주의 인륜도덕에 대한 일반적인 식견이 부족했다.

한국 교회가 걸어가야 할 방향에서 두 가지만 제안하겠다. 토론을 위한 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하나는, 교회와 기독교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큰 그림을 그리며 거룩한 전략을 갖고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금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역사상 해결될 수 없을 것 같던 갈등이 해결된 경우는, 폭력이나 무력을 쓰지 않았다면, 거의 예외 없이 큰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두 영역이 큰 틀 안에서 전략적으로 하나가 되면 신앙고백적인 자기 정체성과 사회 정치적인 연관성을 같이 끌어안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특별계시와 연관된 자기 정체성을 더 성숙하게 하면서 일반계시(자연계시)와 연관된 사회 정치적 연관성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사역에서 세 가지 점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절차를 중시하는 법치적 민주주의, 상생을 겨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양심을 뿌리로 한 인도주의 인륜도덕이다. 자라는 세대와 어른 세대가 교회 생활에서 이 세 가지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 전체, 동북아를 중심한 아시아 태평양 시대, 21세기의 지구촌 전체를 바라보는 성경적 지평을 그리스도인에게 열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