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과 역할









김 성 영(백석대 석좌교수)





Ⅰ 서  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은 피스 메이커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구속하신 목적이며,  성경의 중심사상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사명과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우리의 모습을 겸손하게 반성하고, 신들메를 고쳐 메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이러한 반성의 답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있으며,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분발하여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바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화평(和平, Peace)과 화평케 하는 자(和平者, Peacemakers)의 의미와, 화평의 양방향성과, 본 주제인 '피스 메이커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Ⅱ 본  언

1. 화평과 화평자의 의미

   1) 문자적 의미
  한글성경에 ‘화목(和睦, 롬5:11)’ 또는 ‘평안(平安, 시119:165;122:6;롬8:6;엡6:23)’, 평화(平和, 사52:7;슥6:13;눅2:14;19:42)로도 번역되어 있는 ‘화평(욥25:2;시37:11;85:8;사32:17;마10:34;롬5:1;고전14:13;갈5:22;약3:18)’은 구약에서 히브리어로 שלום(shalowm)인데, ‘안녕’, ‘건강’, 번창, ‘평안’, ‘완전’의 의미를 갖습니다.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είρήνη(eirene)인데, ‘(문자적으로) 평화’, ‘(함축적으로) 번영, ’하나가 됨, ‘고요’, ‘안식’, ‘다시 하나가 됨(롬1:7;고후 13:11)의 의미를 갖습니다.
  화평자(화평케 하는 자, 마5:9)는 είρηνοποιός(eirenopoios)인데, '화해적인‘, ’화평한‘에서 발전하여 ’화평케 하는 자‘의 의미로 쓰입니다[είρήνη와 ποιέω(만들다, 창조하다, 실천하다)의 접목에서 유래]. 성서의 문자적인 의미를 종합해 볼 때, ’화평[평화]‘은 완전을 지향하며, (다시) 하나가 되는 것, 즉 분리되어 있던 상태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써 이미 문자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과 멀어졌던 죄인이) 다시 하나가 되는 상태가 진정한 의미의 화평(평화)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화평자는 이 일을 위해 실천하고 힘쓰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서적 의미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화평[평화]는 먼저 대신관계(對神關係)에서 인간의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실현되는 신인(神人) 간의 정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원수가 되었으며 불화하게 되었습다(롬5:10;엡2:13상;골1:21). 이런 상태에 있는 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인간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죄인을 구속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3:15;행3:20;롬8:29,30;엡1:4~6).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롬5:1).
   다음으로 대인관계(對人關係)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화가 해소되고 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시28:3;슥9:10;마5:9;롬12:18). 이렇게 볼 때, 성서적 평화는 수직과 수평의 양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관계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불가분리의 관계이며, 순서상 대신평화(對神平和)에서 대인평화(對人平和)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대인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은 집단과 공동체, 국가와 사회로 확대됩니다. 이것을 발제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양방향성’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1)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 : 수직의 평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먼저 평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과 평화할 수 없습니다(시28:3;롬3:23).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대속 사역을 통하여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평케 하셨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4),” “그의 십자가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성경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명령하십니다(욥22:21;고후5:20).

  대체로 화평[평화]를 말할 때, 사람 사이의 평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평화]를 전제로 사람과의 평화를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평화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사람과의 평화를 온전히 이루지 못할뿐더러, 실패할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 점을 4세기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황금의 입(chrysostomus)'이란 별명으로 불리었던 요한 크리소스톰(347-407) 선생이 ‘화평의 말씀’인 로마서 5장 상반부(1~11)를 설교하면서 주의 깊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5장 1절의)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사도(바     울)는 ‘화평을 누리자’는 말로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엄청난 죄구덩이에서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의롭게 되고 자유롭게 되었다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속 하나님과 화평을     유지해야 합니다(「크리소스톰 로마서 강해」, p.174. 송종섭 역, 지평서원,        1990).”

  이처럼 성경이 가르치는 화평[평화]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이웃[세상]과 진정한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또한 이 일을 위해 힘쓰려는 사람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께서 이루신 수직의 화평에 들어가야 합니다.
  존 칼빈 선생은 <기독교강요>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기능’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화목의 주권적인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 남아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영접하실 수가 없     다. 그러므로 모든 적의의 원인을 제거하고 우리를 온전히 그 자신과 화목시키     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모든 악     을 씻으시고, 이전에 부정하고 불순했던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거룩한     자로 나타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로 먼저 나아     가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와의 화목을 예견하시는 것이다. 과연 하     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요일4:19) 그 분이 우리를 자기와 화목     시키시는 것이다(「기독교강요」, 상[제2권], p.620. 원광연 역, 크리스챤 다이     제스트, 2003)."
    (2) 사람과 사람의 평화 : 수평의 평화
  이와 함께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평화]입니다. 즉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수평의 평화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 양방향성은 대신(對神)에서 대인(對人)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대신이 중요하고 대인은 덜 중요하다는 종속개념이 아닙니다. 대신(對神) 평화를 이룬 사람은 필히 대인(對人) 평화를 이루게 됩니다. 대인 평화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대신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입니다. 대신 평화의 빙거(憑據)가 곧 대인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은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사람을 화목케 하셨을 뿐더러 동시에 옆으로 사람끼리 화목하게 하십니다(마5:24막9:50).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고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2,13)”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과도 화목(고후5:19;히1:3;4:10)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화평케 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된, 화평의 은혜를 입은 자가 ’세상을 화평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먼저 화평의 은혜를 누린 자로서 세상[이웃]과 더불어 화평하고, 평화가 없는 곳에 참 평화를 전하라는 일종의 지상명령입니다.
  존 칼빈 선생은 이 말씀을 강론하면서, ‘화평케 하는 자(the peacemakers)'를 설명하기를 “예수님께서는 평화에 대한 열망을 가진 자들, 곧 할 수 있는 한 모든 다툼을 피하고 더 나아가서 타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을 수습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만민에 대한 평화의 사자로서 미움과 앙숙을 불식하려는 자들을 두고 화평케 하는 자들이라 하셨다.”고 했습니다(존 칼빈,「신약성서주석」1. p.250. 성서원, 1985). 그러면서 피스메이커의 고충으로, 서로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일의 어려움과, 양쪽으로부터 당하는 모욕과 불평, 심지어 자기편이 되어 싸워주기를 강요할 때의 난처함 등을 들면서 “피스 메이커는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볼 것을 명하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평화의 주인이시므로 우리가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하지 말 것은, 이 본문이 대인관계에서의 화평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인데 이처럼 대인과의 관계에서 화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대신관계에서 화평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화평을 위해 일할 수 있으며, 세상도 이런 진정한 평화의 시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진정한 화평에는, 그리고 그 화평을 위하여 일하는 피스 메이커의 사명에는 십자가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회 정의나 화평에 치우친 나머지 하나님과의 화평을 소홀히 해서 안 되며, 반대로 하나님과의 화평에 치우친 나머지 사회 정의나 화평에 소홀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수직의 평화와 수평의 평화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 화평자의 사명과 역할

  그러면 이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s)의 사명과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발제자는 위에서 살펴 본 바에 따라, 화평자의 사명과 역할 또한 대신관계와 대인관계라는 양면성에서 찾습니다. 발제자는 1) 복음의 전파와 2) 화평을 위한 섬김과 봉사, 3) 화평을 위한 자기희생이 화평자의 자세라고 봅니다. 사회[남북·지역·계층·노사·이념 등]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데 왜 복음 전파가 강조되는가 하는 이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교회]이 평화의 사도가 되는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노력 없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평화와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義, righteousness)의 공효(功效, fruit)는 화평(和平, peace)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하신 사랑(Agape) 없이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사랑 없는 정의와 평화는 위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는 그러므로 피스 메이커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성서적인 근거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후5:18)”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명을 부지런히 감당해야 합니다.

  1) 피스 메이커는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나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9)” 라고 하십니다.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며 하나님과 세상과 화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피스 메이커는 복음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신자들을 대하거나, 사상과 이념이 다른 개인과 집단을 위해 피스 메이커의 역할을 감당할 때, 세상의 가치관이나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비성서적인 방법에 동조하거나 그것을 묵인하면서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고 하신 말씀에 담긴 진리의 역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혀야 하지만 그것을 피스 메이커의 최종 사명과 역할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피스 메이커의 최종 목적은 복음으로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화평케 해야 합니다(마5:9).

  2) 피스 메이커는 세상을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피스 메이커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을 섬기며 겸손히 봉사해야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하심 같이 피스 메이커는 이웃을 섬김으로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화평의 복음을 전하시는 한편(행10:36), 성령의 능력으로 착한 일을 행하시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심으로 섬김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복음과 섬김’은 피스 메이커가 갖추어야 할 사명이라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섬기는 자'이자 ’봉사자‘입니다. 그런데 성서적으로 섬기는 자나 봉사자는 같은 말입니다. 다같이 ’종(servant)'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화평케 하는 자는 진정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구약에서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봉사자들이었고(스8:17;사61:6), 신하는 왕을 섬기는 자들이었으며(대상27:1;잠29:2), 천사는 여호와 앞에서 섬기는 자들입니다(시103:21;104:4). 이와 같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과 치리자들, 그리고 교사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롬13:14;고후6:4;골1:7;마20:26~28).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계층 간, 지역 간, 이념 간의 갈등과 불화가 심각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히 이웃을 섬기며 봉사함으로 피스 메이커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3) 피스 메이커는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 사명의 자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피스 메이커는 화평을 강론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피스 메이커는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본질적으로 희생제사(犧牲祭祀)로서 이것은 동물을 제물로 해서 드리는 ‘피흘림의 제사’였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회중의 죄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의 관계로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이 희생제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히9~10장). 구약의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의 예표이며, 그분은 대제사장이자 스스로 제물이 되심으로써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 희생제사를 완성시킨 것입니다(히9:26;10:12,18). 여기에 근거하여 신자들은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바치는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피스 메이커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자 할 때, 십자가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존 칼빈 선생의 지적처럼 어떤 수고와 오해, 비난과 박해도 감수하며, 주님의 방법을 모델삼아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Ⅲ 결  언 :  우리의 현실과 화평자의 책임
  
  우리는 이 주제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입시켜 봐야 하겠습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물질과 눈부신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나, 시대는 날로 세속화되어 이 땅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오랜 세월 남북 분단의 비극 속에서 북한 동족들이 절대 빈곤과 인권 유린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소외 계층이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국제적인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평화의 종소리보다는 전쟁과 증오와 갈등의 불협화음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화평의 진원지가 되어야 할 교회마저 성령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분쟁과 분열을 일삼고 있으니 영적인 위기가 그 수위를 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해야 할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사명은 실로 막중한 것입니다. ‘남은 자(remnant)'’의 소명의식과 각오로 여기 모인 소수의 무리부터 피스 메이커로서의 사명과 그 역할을 적극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국가 정책적 가이드라인으로 말미암아 돌파구를 열지 못한 채 오랜 경색국면에 처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화평케 하는 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애 할 때입니다. 정부도 보다 유연성 있는 정책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켜 평화가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더욱 절실한 시대입니다. 이 기도문에서 특히 주목할 곳은 끝 부분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이란 절구(絶句)인데,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당신의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게 하소서.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여 주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여 주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가 아낌없이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알게 하여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