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을 이어받아 :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사명과 역할
                                               -불교의 입장에서-





                                                                                                           법  륜 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정토회 지도법사)





올해는 기미년 3․1독립선언이 있은 지 9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곧 3․1독립선언 100주년 맞게 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한 채, 미완성의 독립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일제에 빼앗겨 36년간 식민 지배를 받은 것도 큰 고통이었지만,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분단 70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한 것도 그에 못지않은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런 분단의 고통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한반도는 통일은커녕 평화마저 위태로운 남북 대결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3․1운동 96주년을 맞는 우리 마음은 기쁨보다는 아픔이 큰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적으로 점령한 후 헌병경찰을 앞세워 숨 쉬기도 힘들 만큼 폭압적으로 조선을 통치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배한 뒤 이제는 조선 백성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줄로만 알고 있던 차에 2천만 동포가 하나같이 일어나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니 일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비폭력적이었던 독립만세운동을 무자비하게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습니다. 수많은 재산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런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1919년 한 해 동안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독립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런 독립운동에는 경상도니 전라도니 함경도니 평안도니 하는 지역적 차별도 없고,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계급적 차별도 없고,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적 차별도 없고,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종교적 차별도 없었습니다. 조선 백성이면 누구나 다 한마음이 되어서 민족의 염원인 조선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결국 일본도 총과 칼로는 우리 민족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3․1독립운동 이후에는 무단통치를 폐하고 문화정치를 펼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원하는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주의식과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3․1운동이 실패했다고 여겼지만, 그 후 26년이 지나 결국 일제는 패망했고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긴 역사에서 보면 3․1독립운동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운동입니다. 그 억압과 압제의 세월 동안 우리가 3․1독립운동 같은 자주독립 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조국 광복 후 우리는 민족적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혀 적은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의 염원을 한데 모아 독립운동이 전 국민의 운동으로 번지게 한 불씨는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함께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나와 저절로 시작될 수는 없습니다. 민족대표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여 함께 참가하도록 물밑 작업을 한 사람이 없었다면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고 봄비가 내리면 싹이 터서 잎이 자랍니다. 봄비와 따뜻한 기온이 싹을 틔운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겨우내 땅속에서 견뎌낸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봄을 맞아서 싹이 돋아난 것입니다. 3․1독립운동에서도 이 씨앗과 같은 역할을 누군가 했기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각계 대표들이 그 짧은 시간에 함께 모일 수 있었으며, 국민들이 일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신 분 중의 한분이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이십니다. 백용성 조사께서는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6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조선왕조시대 나라의 녹을 먹고 온갖 권세를 누린 고위관료로부터 지방관리까지, 3정승 6판서 8도 감사 360개 고을 수령 방백을 지낸 사람들과 심지어는 그들의 후손까지 찾아다니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 줄 것을 호소했지만 어느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나라의 혜택을 입고 살았기 때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가장 열성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있을 때 나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라가 위기에 빠지니까 나라를 구하려고 일어나는 백성들을 보면서, 조사께서는 이제는 백성들이 아니면 아무도 나라를 되찾을 사람이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용성조사께서 나라를 되찾으면 기존의 신분질서로 복귀하는 왕정이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운동으로 향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에는 백성들이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먼저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나라로부터 혜택은 못 받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먹고 살만하고 국제 정세도 알만한 지식인 계층인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당시 최대 종교는 300만 명의 신도를 가진 천도교였습니다. 기독교는 10여만 명을 가진 신생종교였고, 불교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극심한 탄압을 받아 결집이 쉽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천도교 손병희 교주를 찾아가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하면서 전 민족운동이 되게 하려면 모든 종교가 크든 작든 다 참여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또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우니 33천 하느님의 도움이 있어야 하기에 33천 하느님을 상징하는 33인으로 민족대표의 수를 정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모을 상징 깃발로 한반도기보다는 태극기를 들자고 하는 등, 용성조사는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종교인들의 힘을 모아 전 국민적 운동이 되도록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은 일들을 해내셨습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준비하는 이가 있었기에, 때가 왔을 때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사회적 갈등의 그 밑바닥에는 분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분단된 상황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는 지속적 발전이 어렵습니다. 성장은 둔화되고 국제 환경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묘하게 변화하면서, 미·중의 경쟁과 갈등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민족의 분단이 고착화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남북 갈등이 심화되니 북한에 대한 방위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36년 간 지배한 일본과도 군사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이를 용인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진행되면 결국 남한은 미일 군사동맹체제 아래에 들어가고 북한은 중·러 군사동맹체제 아래로 들어가서, 우리는 또다시 강대국의 하위변수가 되어 남·북끼리 새로운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북한은 굶어 죽는 국민을 두고도 군사비를 확충하고 있고, 남한은 복지비의 수요가 많은데도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3․1독립선언서에 나온 것처럼 전 국민의 뜻을 모아서 ‘우리의 살 길은 통일이다. 통일만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길이고,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길이고, 북한주민의 인권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길이고, 남한 내의 여러 갈등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일은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을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길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의병 정신을 계승하여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활동하는 ‘통일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선조들처럼 이름을 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을 해주었기에  사실은 통일이 이루어졌다.’라는 일을 우리가 해내야 합니다. 종교간 협력을 구하고, 정부와 협력하고, 지역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뜻을 모아 통합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준비해야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곳 경동교회에 모인 우리 종교인들은 당시의 독립운동가처럼 우리부터 통일의병이 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훗날 통일의 공로로 환영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받도록 하고 우리는 뒤에서 밀어주는, 이런 보이지 않는 일을 우리가 꼭 함께 해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96년 전 민족의 독립을 생각하며 모였던 각 종교계 민족대표들을 생각하고, 3․1운동을 생각하는 자리라면,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서 종교와 지역, 민간과 정부,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모두가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데 헌신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