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





                                                                                              김 홍 진 신부
                                                                         (서울대교구 쑥고개성당 주임)






1.  올바른 역사 인식

  인간은 시간의 한계성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시간의 한계성을 뛰어 넘는 초월성을 지니기도 하기에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각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라는 의미를 시간의 초월성에 대해 연결하여 확대 해석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지난날의 기억을 바탕으로 과거를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의 상상력 속에서 미래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항상 체험하는 것은 현재의 이 시각, 바로 여기일 뿐입니다. 때문에 이 시각, 바로 여기에서 지난 과거의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미화시킨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대한 전적인 부정이며 올바른 미래 설정에 커다란 장애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때문에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곡하거나 망각한다면 그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아니 반복될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역사에서 소멸될 것임을 인류 역사는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구세사의 여정 속에서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명, 배반, 부끄러운 역사들을 반면교사로 간직하면서 자신들이 선택해야할 분명한 지평들을 지니고 살아왔었습니다. 때문에 나라를 잃고 근 이천년 동안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졌던 유다인들은 결국 그들의 새로운 국가 이스라엘을 건립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독일은 그들이 행했던 수많은 과오들에 대한 사죄와 함께, 세계 역사 앞에서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전후 그들의 과오를 사죄하고 청산하기는커녕 미국의 비호 아래 군사대국의 길로 치닫고 있었으며 자신의 역사마저도 미화시키고 왜곡시키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과연 그러한 일본이 이 지구촌의 역사에서 언제까지 존재하게 될지 두고 보아야겠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의식에 대해 우리는 ‘망언이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나 하라’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자신의 역사 인식에서는 극우 성향의 일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집단들이 있음을 우려합니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사관을 한반도 문명개화의 시기로 미화시키거나, 일제 강점기 시기 친일 잔재의 청산을 방해했던 사람을 국부로 칭송하는가 하면, 군부 쿠테타를 혁명으로 포장하려고 하며, 군부 하극상 사건과 이어진 광주민중학살 사건에 대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아야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다고 하는 괴변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라면, 과연 우리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외칠 자격이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라고 조종하고 그에 따른 날조된 역사를 교과서로 만들어 팔고자 하는 이 나라 교육부 장관은 일제의 앞잡이가 아닌가? 그러한 사태를 방조하는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인가? 하는 당연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합리적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입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이러한 현실들은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너무나도 수치스런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문에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바치신 수많은 우리 선조 연령들 앞에 우리는 차마 얼굴을 들지도 못하는 지지리도 못난 부끄러운 존재들임을 고백합니다..


2.  3.1 운동은 혁명입니다.  

  혁명이란 ‘한 나라의 국체, 정체, 또는 사회제도나 경제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새로 만들거나, 이전의 왕통을 뒤집고 다른 왕통이 대신하여 통치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의미합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의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당일 탑골공원에 모였던 수많은 인파의 만세 시위는 전국적으로 불같이 번졌으며 이는 한반도 전체를 뒤흔들었던 한국의 근. 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당시 일제 경찰의 공식 통계에 따르더라도 연 인원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46,948명이 체포, 투옥되었고, 2만여 명 정도가 미결수나 기결수로 수감되었고, 부상자는 15,900여 명, 사망자 7,500여 명에 이르렀다 합니다. 이러한 통계는 당시 3.1 혁명에 참여한 분들이 나라의 자주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2만여 회에 걸친 시위에 동원 인원은 500만여 명이 훨씬 넘었다고도 합니다. 당시 한반도 인구가 대략 2천만여 명이라는 수치를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뜻있는 사람들 모두가 참여한 민족의 대 거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진영의 인식은 3.1 운동, 3.1(대)혁명, 독립선언, 만세운동, 기미운동, 기미독립운동 등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는 3.1 운동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으나 독립 운동의 발전에 따라 독립 운동가들은 3.1 혁명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중일전쟁(1937년) 이후부터 중국내 독립운동의 양대 진영인 임시정부와 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3.1 혁명이라는 인식으로 정형화되어 갔으며, 임시 정부도 1941년부터는 3.1 대혁명으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1943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3.1 대혁명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은 바로 반일독립과 민주자유이다... 자존과 공존, 민주와 단결, 기개와 도의, 자신과 자존이야말로 3.1 대혁명 정신의 요체이자 전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김구는 3.1 혁명이 독립을 목표로 한 민족 혁명이자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민주 혁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1944년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전통을 가지고 스스로 개척한 강토에서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국가 생활을 하면서 인류의 문화와 진보에 위대한 공헌을 하여왔다. 우리 국가가 강도 일본에게 패망된 뒤에 전 민족은 오매에도 국가의 독립을 갈망하였고 무수한 선열들은 피와 눈물로써 민족자유의 회복에 노력하여 삼일대혁명에 이르러 전민족의 요구와 시대의 추향에 순응하여 정치, 경제, 문화 기타 일절 제도에 자유, 평등 및 진보를 기본정신으로 한 새로운 대한민국과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건립되었고 아울러 임시헌장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국회에서 당시 유진오 안을 중심으로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만든 헌법 초안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3.1 혁명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전문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도 의원 자격으로 한 발언에서 기미년 3.1 혁명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음에도 7월 7일 조국현이 “조선이 일본하고 항쟁하는 것, 곧 독립운동은 혁명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3.1 혁명을 항쟁으로 바꾸자는 발언을 하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이에 불과 엿새 전만 해도 혁명으로 부르자던 이승만도 혁명이라는 것이 좋은 문구가 아니라는 데 가세하여 이승만을 따르던 윤치영, 한민당의 백관수, 김준연, 친일파 출신 이종린 등 5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에서 조헌영이 제안한 ‘기미 3.1 운동’으로 바꾼 수정안이 제출되자 사회를 맡은 이승만이 토론을 막은 채 수정안을 표결에 붙여 재석의원 157인 중 가 91, 부 16으로 통과됨으로써 3.1 혁명은 헌법에서 사라지게 되어 3.1 운동이라는 단어로 격하되었습니다.
  이러한 통탄할 역사의 굴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조가 사라진 땅에 인민이 이 땅의 주인으로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이루려는 자주민이라는 단어 속에서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이자 부당한 폭력의 주체인 일제 조선총독부에 대항하여 주권자로서의 민중이 봉기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으며, 동시에 자유, 민주, 평등의 가치를 내건 새로운 체제의 확립 곧 민주공화제의 확립에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연장선에서 3.1 혁명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 건립 이념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주공화제의 내용이 아무런 반대 없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음을 볼 때 3.1 혁명은 당연히 일개 독립운동의 차원을 뛰어 넘어 민주 대혁명으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3. 3.1 정신

  3.1 혁명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우선 이 나라의 자주 독립이었습니다. 외세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민족 구성원 대다수가 총칼에 맞서 맨 몸으로 의연히 나섰던 자주 독립 혁명이었습니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나라를 잃은 백성이 거국적으로 궐기하여 되찾고자 했던 자주적 독립혁명이었습니다. 그 혁명의 운동은 민족의 자존과 공존, 민주의식과 단결, 기개와 도의, 자신과 자존감이 넘치는 정신에 가득 차 있음을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김구는 우리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독립은 다른 외세에 맡길 수 없음을 당시의 대다수의 민중들은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3.1 혁명은 일제 앞잡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들이 항거하였던 대중 혁명이었습니다. 당시 한반도 인구 이천만여 명 중 오백만여 명이 궐기하였다면 그것은 노약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모든 민중들이 함께 하였던 민족적 거사였습니다. 그 혁명 앞에서는 대부분 어느 누구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맨주먹과 맨 몸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항거하였던 대중적 비폭력 혁명이었습니다.
  훗날 이러한 3.1 혁명 소식을 접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동방의 등불 코리아,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고 찬탄 하였으며, 그 빛은 간디의 영국 정부의 통치에 대한 비협력, 불복종, 무저항 운동으로 1763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인도 식민지 정책을 종식시킨 바 있습니다.


4.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

  오늘날 한반도 이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념과 사상, 지역과 혈연 및 학연,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등등으로 보이지 않은 장벽으로 서로간의 차단막을 치고 살아가는 실정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갖고 있는 사람은 적이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나의 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무장을 해야 겨우 공동체 안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이처럼 합리적 이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야만의 사회, 그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맨 얼굴입니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건강한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다양성은커녕 목소리 큰 인간들, 소위 힘 꽤나 쓴다고 하는 사람들의 세상인 것 같습니다.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소리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며 그에 함께하는 양심 세력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다양성 대신에 단일화를, 배려와 받아들임 대신에 배척을, 함께함 대신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사고들이 팽배한 이러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도 될 수 없습니다.
  남, 북의 분단이 이미 반세기도 훨씬 넘었습니다. 외세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체념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남, 북의 분단은 동족 상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유발하였으며 이 로 인해 서로 간 원수가 되었고, 아직도 그 잔재는 남, 북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화해와 일치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긴장감과 함께 서로의 군비확충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극동 아시아의 군사적 갈등도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대국 사이에 한반도는 마치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표징은 다시금 일어나 깨어 외치라는 예언자적 소명을 우리 종교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적 소명을 3.1 혁명의 정신에서 유추해 보고자 합니다. 다음의 내용들은 우리 종교인들이 3.1 혁명정신으로 거국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운동들이라 생각합니다.
  
  가. 합리적 이성이 작동되는 정상적 사회로의 대중적 계몽운동 (바른 언론 창출, 가치관  정립 운동)
  나.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공동체 만들기 운동 (부정, 부패 타파 운동)
  다. 사랑과 배려와 관용이 넘치는 사회 만들기 및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정책 만들기 운동 (적극적 사회복지 운동)
  마. 남, 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구체적 실천 운동 (평화 통일 운동)
  라. 환경과 에너지위기에 대응한 실천 운동 (핵에너지 탈피 및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 실천 운동)
  바. 식량 자급자족 운동 (농어촌 살리기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