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의미와 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
                                                  -신학적 관점에서-
              





                                                                                               김 영 한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개혁주의 유신론적 세계관은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주권을 강조한다. 선과 복과 생명과 번영만이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재앙과 죽음과 질병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재앙에 대하여 논할 때 기독교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논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적 입장에서 이 세상은 선신과 악신의 이원론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지배된다. 악신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귀속되어 그의 재앙의 뜻을 이행하는 사자(使者)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은 유일신 주권론적 이원론이다.

1) 재난과 복의 이원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론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신을 재난의 신과 복의 신으로 이원론적으로 보아 이 두 신이 서로 대립하고 투쟁한다고 보지 않는다.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는 우주를 선신과 악신의 투쟁으로 해석한다. 성경은 악신을 인정하나 이 악신은 사탄 내지 마귀로 불리우며,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귀속하는 그의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본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욥 1:12). 이러한 욥의 구절은 유일신론적 주권론을 증거해준다.

2) 재난에 대한 십자가 신학 착상
<1> 재난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

재난은 역사와 자연을 그의 주권적 섭리에 따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다. 역사적 재난과 자연적 재난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서 일어나고 그 분의 뜻을 이룬다. 재난에는 뜻이 있다. 20세기 한국에 일어난 1910년 한일합방, 1945년 해방과 분단, 1953년 6.25 전쟁, 2001년 미국의 9.11테러는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다. 역사적인 재난은 민족들이 행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한일합방과 6.25 전쟁은 조선왕조 5백년 동안 당쟁으로 인한 집권층의 반대파 살육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8.15 해방은 그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의하여 우리는 자력이 아니라 유엔군의 희생의 대가로 해방을 맞았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 현실 또한 아직도 조상의 죄업을 치루어야 할 민족의 정화과정이다.
역사적 재앙에는 그 뒤에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섭리를 헤아리는 자들이다.

<2> 재난에 대한 십자가 신앙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은 세상적으로 영광스러운 모습의 가시적인 현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명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진정한 구속의 경륜을 드러내셨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는 피력한다. “참된 신학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참된 하나님의 임재는 눈에 보이는 번영과 성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재난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게 될 때 아들을 진노의 처형 속에 내버려두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눈에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이 바로 십자가 신앙을 통한 하나님 인식이다.

일반적인 기복종교들은 영광의 신을 추구한다. 기복종교 신자들은 세상의 각종 축복, 출세, 명예, 성공과 번영 속에서 인간에게 그러한 복을 주는 신에게 경배하고 그러한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각종 재물과 정성을 바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두운 면, 각종 재난과 질병과 죽음과 좌절과 실패 속에서 이러한 어려운 처지 속의 인간과 연대하시는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그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교훈과 사랑을 인식하도록 한다. 십자가 신앙의 하나님은 기복이나 번영의 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고난과 재난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참 삶의 길을 알게 하시고 복과 은혜의 길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이다.

자연과 역사의 재난과 재앙, 이로 인한 고통 속에서 그의 피조물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낯설은 모습을 그의 십자가 속에서 우리 인간의 죄와 연대하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유비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인식과 경외에 도달하게 된다. 재난과 그것이 수반하는 무자비함과 냉혹성과 그것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오로지 십자가 상에서 우리와 연대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만 우리는 재난과 재앙 가운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십자가 신학의 착상이다. 이는 기복적 신앙이 아니라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한 신앙인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이 하나님의 음성을 믿지 아니한 고통당하는 동료에게 증거하는 신인식을 말한다.

3) 자연의 맹목적 재난은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자연 자체가 가진 맹목적 의지에 의하여 우리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재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기체인 지구 자체는 의식을 지닌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 메카니즘에 의하여 운영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의 간섭이 있다. 2004년 인도네시아에 임한 지진 해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 임한 지진 해일 2013년 필리핀 타클로반(Tacloban)에 임한 수퍼 태풍 타이엔 등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14년 1월 전북 고창.부안 오리농가에서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중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고병원성 AI(조류 인플루엔자)도 맹목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재앙을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4)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이 온전히 집행된다.

이사야는 북왕국을 멸망시킬 앗수르의 재앙과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면서 이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작정이 집행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 10:22-23).  

여기서 개혁신학은 열린유신론(open theism)을 비판한다. 열린유신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작정은 열려있어 사건의 종말을 하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지 하나님조차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사의 종국이 어떻게 될지 하나님도 모른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에 대한 제한을 의미한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와 하나님을 비방하였을 때 이사야는 다음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사 37:26).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 이사야는 고레스 왕의 일어남이 태초부터 작정하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며, 이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만대를 정해 놓으신 분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5)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재앙이 아니라 복주심과 우리의 구속과 복락이다.

2004년 인도양에 일어난 쓰나미와 2013년 필리핀의 수퍼 태풍의 결과는 죽음과 절망, 고통이 범벅된 지옥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진노의 하나님의 모습, 숨어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할 수 있다. 버림받고 재난 속에서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신약 베드로 서신에서도 하나님의 인내와 긍휼을 말하고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맺음말
개인적으로는 질병에 시달리고, 시대적으로는 불우한 때를 경험한 독일의 루터교 복음주의 신학자 틸리케는 다음과 같은 신정론(Theodicy, Theodozee)의 질문을 제기하였다. “왜 하나님은 악과 불의가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가?” 20세기 전･후반에 있었던 사회적인 긴장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틸리케 자신은 자연의 재난과 세계의 사건을 맹목적으로 읽지 않고, 심판과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직관하였다. 고난에 대한 바른 질문 속에서 틸리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攝理)와 목적에 참여하는 해방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재앙과 자연적 재앙이 우리에게 다가 올 때 왜?(why) 이런 고통이 왔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는 무엇을 위하여(for what), 무슨 목적으로(for what purpose) 이러한 재앙이 우리에게 주어지는가를 기도하면서 스스로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