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 원수 사랑





                                                                                                     손 동 희 권사
                                                                           (여수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의 딸)






김명혁 목사님으로부터 ‘원수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제목으로 20분 분량 정도의 말씀을 부탁받았습니다. 수락하고 난 후 기도하면서 성경에 ‘사랑’과 관련된 말씀을 찾아 계속 묵상하였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교훈 중에 ‘이웃 사랑’에 대한 말씀을 더 깊은 묵상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경에서 이웃 사랑에 관한 말씀을 자주 읽어왔고 또 설교 말씀을 통해서도 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마다 “나는 그래도 생활 속에서 늘 이 사랑을 실천해왔는데 뭘...”하며 무심코 지나쳐 버렸습니다. 내가 그동안 지금까지 꾸준히 베풀어 왔던 작은 선행을 생각하며 ‘이웃 사랑’에 대해서 약간의 자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이웃 사랑‘의 말씀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저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심각해졌습니다. 내가 생활 속에서 어려운 몇몇의 사람들에게 알량하게 베푼 동정은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사랑의 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사랑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하는지를 가르쳐주셨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보니 이러했습니다. .
“네 이웃을 네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로 사랑하라”
“누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치라고 돌려 대어주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
“이웃이 억지로 오 리를 함께 동행하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라”
“원수를 사랑하라”
“한 술 더 떠서 원수가 잘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라”

물론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볼 때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신 것이 아닌가, 내 거액의 돈을 사기치고 도망간 사람을 잡았는데 그를 벌 주기는 커녕 내 몸을 내가 아끼듯이 내가 그를 아껴주고, 심지어 그가 성공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까지 해주라고 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이 교훈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을 때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닐 것이라는 겁니다. 뜻 없이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사랑 장으로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의 내용도 문자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고 하는데 누가 이 정도의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는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주셨을 때 지키지 못할 것을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산상수훈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액자에 새길 용도로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지키라고 주신 말씀일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인간으로서는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초자연적인 힘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가능합니다. 인간이 하면 불가능하지만 성령님이 하면 가능합니다.
저는 김명혁목사님께서 ‘원수사랑’이란 제목을 저에게 주셨을 때 손양원목사님을 의식하고 부탁하였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저의 아버지 손양원목사님은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의 크신 감동이 없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감동시켜서 행하신 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자기 두 아들을 무참히 살해한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아들로 받아드리게 하신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때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948년 10. 19일 제 나이 16세 때였습니다. 여순 반란 사건이 일어나서 두 오빠는 좌익학생들에게 끌려가서 무수히 얻어맞은 후 총살당했습니다. 두 오빠 장례식을 마치고  여기저기에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동인, 동신 죽인 놈 잡았다. 이 놈은 두 오빠 친구들에게 잡혀서 무수히 매를 맞은 후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날짜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문을 들었을 때 내 두 오빠를 죽인 저 원수를 내 손으로 죽여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두 오빠를 죽인 저 원수를 사형장에서 빼내어 아들로 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실성을 하셨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잘 압니다. 한번 생각을 굳히면 반드시 실행에 옮기신다는 것을... 저는 반항했습니다. “그런 놈은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성이 안 풀리는데 아니 자식을 삼겠다고요. 미쳤습니까?” 그 때부터 아버지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동희야, 날 쳐다봐라. 내가 어차피 하나님의 1번 계명과 2번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감옥에 갔다. 1,2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도 불변의 하나님의 명령이다. 동희야, 내가 어찌 1,2계명만 순종하고 원수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이 얼마나 큰 모순이냐? 내가 만일 원수 사랑의 명령을 지금 지키지 못한다면 과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일도 헛일이요 너희들 그렇게 고생한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니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넘어질 수가 없구나”
저는 아버지의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 놈을 죽여야 한다는 그 일념뿐이었습니다. 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친 사람처럼 대들었습니다. “용서하면 했지 아들 삼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저놈을 아들 삼으면 내 두 오빠를 죽인 저 원수가 내 친 오빠가 되는데 그게 말이 됩니까. 하늘 아래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하며 저는 악을 쓰며 대들었습니다. “아버지 제발 이러지 마세요. 꼭 이렇게 까지 예수를 믿어야 해요. 너무 별나게 그러지 마세요 왜 아버지는 항상 별난 예수를 믿습니까”하며 악을 썼습니다. 아버지는 또 말합니다. “동희야 성경을 자세히 보아라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된다. 동희야 저 놈을 살려주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아들을 삼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진실로 따르는 것이다”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신앙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또 나 스스로도 아직 어린 나이였다. 16세 나이에 아버지의 신앙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성령님에 사로 잡혀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말 보다 하나님의 말 한마디면 ‘끝’을 보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사형직전에 처한 그 학생을 빼내어 아들로 입적시키고 난 후 부산고려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 후  1950년 6.25가 터졌다. 아버지의 동료 목사님들이 와서 같이 피난가자고 종용했을 때 아버지는 그것을 거절하셨다. “당신들이나 가세요. 난 기왕에 감옥에서도 죽었을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8.15해방을 주신 것만도 난 감사하고 족하네”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 난국에 가장 시급한 일은 공포에 떨고 있을 양을 돌보고 신앙을 독려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 나환자들을 버려두고 혼자 살겠다고 피신하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들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모든 나환자들과 함께 금식기도와 철야기도를 하시며 공산당들을 만날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 해 9월 13일 공산당들은 애양원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여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아버지의 짧은 감옥 생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원이 20명인 감방에는 40~50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자루였습니다. 나오는 음식이라고는 주먹밥 뭉친 것과 굵은 소금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이나마 큰 놈을 잡으려고 서로 뒤엉켜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맨 마지막에 남은 주먹밥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장 수척해 보이는 사람에게 항상 자기 밥의 반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사랑은 이렇게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는 일체의 말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말하다가 발각당하면 개 맞듯이 맞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말을 하다가 지나가는 감독에게 들켰습니다. “방금 말한 놈 누구야. 그 자리에 일어서”! 아무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감독은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안 일어서면 오늘 여기 있는 놈 전부 다 죽은 줄 알어”
이때 아버지가 일어 나셨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말을 한 장본인은 아니었습니다. 이 때 감독은 아버지의 얼굴을 뻔히 들여다보면서 씩 웃으며 지나쳐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말소리가 들린 곳은 분명 앞쪽이었는데 아버지는 맨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삶의 곳곳에서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저는 한 때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왜 아버지는 자기 처자식은 사랑하지 않고 남은 그렇게 사랑하느냐고 말입니다. 자기 신앙만 고집하면 자기 처자식은 죽는데 그 사랑은 왜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아버지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39세 때 신사참배 거부로 감옥에 끌려갔을 때 그의 아버지 손종일 장로께서 주신 말씀을 그 손에 꼭 쥐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39)

아버지는 이 말씀을 자기 생명처럼 여기고 계셨던 겁니다. 아버지는 이 ‘사랑의 도’를 실천하기 위해서 늘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를 간구하고 갈구하셨습니다.


끝으로 아버지께서 나환자를 위해 쓰셨던 기도시를 적어봅니다.

오, 주님!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내 부모 형제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당한 자들이옵고
부모 형제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옵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그래도 나는 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만일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배반할지라도
나는 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만일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저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만일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사랑하여서 종말까지 싫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만일 내가 여기서 쫓겨남을 당하여 나가게 될지라도
나는 저들을 사랑하여 쫓겨난 그대로 남은 세월을 위하여
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랑을 나에게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