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불우한 사람들을 돌아본 한경직 목사





                                                                                                  임희국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사)






1. 허약한 몸으로 약하고 불우한 사람을 돌본 한경직 목사
2. 복순이를 돌보다가 시작된 신의주 보린원(保隣院)
3. 절망의 수렁에서 피어난 소망의 꽃 : 베다니전도교회(영락교회 전신) 설립
4. 1946년 이래로, 월남 피난민의 피난처가 된 영락교회
5. 피난민 자녀를 가르치는 학교설립
6. 한국전쟁 기간(1950-53년)의 디아코니아(사회봉사)
7. 아시아 교회와 연대하며 섬긴 에큐메니컬운동 지도자
8. 선한 사마리아인의 교회: “교회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단체”
9. 정리



1. 허약한 몸으로 약하고 불우한 사람을 돌본 한경직 목사

한경직 목사는 1902년에 출생(出生)하여 일제 강점기,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열망시대의 역사를 차례차례 겪었다. 그의 일생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1945년 12월 2일 베다니전도교회(지금의 영락교회) 창립예배를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이때 그의 나이가 43세였는데, 그의 전체 생애 98년의 한 가운데에 해당된다. 한경직의 생애 전반부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한경직은 일찍이 오산학교와 숭실대학에서 기독교정신에 기초 한 아주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엠포리아대학(Emporia College, 캔자스주)을 졸업했으며, 그리고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당대의 엘리트양성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1929년 신학교 졸업을 앞둔 5월에 그는 병원에서 폐결핵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당시에 이 병은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는데,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했고 오로지 자연요법(신선한 공기, 음식)에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해발 1,600미터에 있는 뉴멕시코주 알버커키시에 있는 요양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특별한 치료나 약도 없이 성경읽고 기도하며 독서하는 가운데서 지냈는데, 그러다가 그의 건강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한경직은 그 이후로 일평생 허약한 몸을 가누며 살았다. 그러한 그를 어떤 이가 “비실비실 오래 살았던” 한 목사님이라 표현했다. 그는 허약한 몸으로, 그러하기에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엄청난 많은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약한 사람과 불우한 처지의 사람을 도왔다.

2. 복순이를 돌보다가 시작된 신의주 보린원(保隣院)

미국 유학을 마친 한경직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직을 희망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희망으로 그쳤다. 그는 1933년 신의주제2교회의 담임교역자로 부임했다. 8년 전 신의주제1교회에서 분립된 이 교회의 교인 수는 장년이 약 400명에 유년이 약 200명 정도 모였고 청년들이 많았다. 한경직은 첫 사역지인 이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들(시무 장로 열 분과 권사 두 분)과 좋은 협력관계 속에서 교역을 시작했다. 예배당이 없던 이 교회는 1934년 봄에 예배당을 짓기 시작해서 그 해 11월에 입당예배를 드렸다. 예배당 완공 즉시 유치원을 설립했다. 그 이후로 신의주제2교회는 일취월장 부흥하여 2,800명 이상 모였다.
기차에 치여 다리를 잃어버린 어린 여자아이(8세 혹은 9세) 복순이가 폐병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돌보았는데, 그러다가 그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복순을 보살피고 돌보는 일이 계기가 되어 한경직은 신의주에 고아원 ‘보린원’(保隣院, 이웃을 돕는다)을 세웠다. 보린원 설립과정에서 그는 적어도 300여명의 평신도가 이 사회사업에 동참하도록 했다. 보린원에는 아이들 약 30-40명과 노인들 10-20명 이렇게 모두 합쳐서 50-60명이 한 가족 공동체로 살았다. 한경직은 시간 나는 대로 전국 여러 곳을 돌면서 보린원을 후원하는 회원모집에 나섰다. 신의주에서 그리 멀지 않는 강계, 초산, 벽동, 중강진의 여러 교회들이(의산노회, 평북노회) 특별히 많은 돈으로 후원했다. 만주의 봉천과 중국의 상해까지 찾아 갔다. 이 모든 과정에 관하여 한경직은 “교회에는 물론 일반 사회에도 이러한 자선사업이나 사회 공익을 위하여 진심으로 호소할 때 기쁘게 협력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1941(혹은 1942)년 일제당국의 명령으로 신의주제2교회에서 쫓겨난 한경직은 보린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분뇨 통을 메고 농사를 지었다.

3. 절망의 수렁에서 피어난 소망의 꽃 : 베다니전도교회(영락교회 전신) 설립

1945년 8·15해방정국의 신의주에서 한경직이 새 나라 건설에 앞장서게 되었는데, 불과 얼마 뒤에 공산주의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위태로운 상황이 되어서, 그는 가족을 남겨 두고 황급히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로 왔다. 아내에게 조차 작별인사도 못한 채 신의주를 떠난 그는 일제에서 해방된 민족의 새나라 건설을 위해 품었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쫓겨나온 좌절로 말미암아 절망하여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서울에서 그는 잠시 동안 미군 군정청 영어보좌 일을 보았다. 그에게 조선신학교 교장 김재준 목사가 해방된 새 나라의 교회에서 일할 교역자 양성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권했다. 그래서 그는 송창근 목사와 함께 신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이 세 목사가 각각 교회를 설립했다. 동자동에 있는 천리교 총본부에는 송창근 목사가, 신당동의 대지와 건물에는 김재준 목사가, 영락정에 있는 경성분소에는 한경직 목사가 교회설립과 함께 여자신학교도 세우기로 했다. 1945년 12월 2일 각기 교회창립예배를 드렸다. 한경직은 “베다니교회”라는 이름으로, 송창근은 “바울교회”라는 이름으로, 김재준은 “야고보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세웠다.
베다니교회의 정확한 명칭은 “베다니전도교회”였다. 그 당시의 교회 이름은 교회가 설립된 동네이름(진고개)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러나 이 교회는 신약성경의 지명인 “베다니”를 따와서 교회 이름을 지었다. 이 동네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한 주간동안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저녁에는 이곳으로 돌아오셔서 주무셨는데, 이 동네에 믿음이 독실한 가정이 있었으니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이었다. 옥합을 깨트려 값진 향유로 예수님을 기쁘시게 한 마리아의 신앙을 본받으려는 마음으로 베다니라는 이름을 택하였다. 또 “전도교회”라고 한 까닭은 “아직 완전한 교회가 되지 못했으며 그저 영어로 표현하면 ‘mission church’(전도소)라는 의미”로 그렇게 붙였다. 베다니전도교회의 창립예배에 27명이 참석했다.

교회설립과 더불어, 한경직에게 절망 속에서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속적으로 억눌리고 억압당하여 한 번도 피어나 보지 못했던 그의 꿈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46년 이래로 수많은 월남 피난민들이 -마치 새들이 날아와 나뭇가지에 깃들듯(마태 13:32)- 영락교회의 품으로 몰려왔고, 배움의 기회를 잃고서 방황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와 영락교회가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미래를 계획했고, 6·25전쟁 중에 부모 잃은 아이들이 그가 세운 보린원(서울)에서 보호받았고, 많은 전쟁미망인들이 교회가 세운 복지기관에서 안식했다.

4. 1946년 이래로, 월남 피난민의 피난처가 된 영락교회

영락교회(베다니전도교회가) 설립된 지 3개월 후, 1946년 3월에 북한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변화된 북한체제에서 살기 어려운 주민들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월경(越境)했다. 월남 피난민 교인들 다수가 영락교회(베다니전도교회)로 찾아왔다. 한경직은 이들을 맞이하고 예배당 구내 부속건물에다 임시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금방, 피난민으로 가득 찬 건물에는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한경직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골몰하다가 -그 당시- YWCA 뒤에 있는 공지 약 1,000여 평을 (미)군정청에 교섭하여 얻었다. 그 공지에다 천막을 치고서 월남 피난민들을 임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영락교회 담임목사 한경직의 연합활동이 시작되었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시작한 연합활동이 아니라, 월남 피난민들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쉼터와 거처를 마련해 주고자 ‘응급조처’로 시작한 활동이었다. 한경직은 미국 군정청에게 물자협조를 요청하고 그들의 협력을 받아 활동했다. 피난민 천막촌에는 대략 130여 세대 정도 올망졸망 살았고, 이곳에서 피난민이 석 달 동안만 살게 했다. 여기에 살던 피난민은 천막촌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했고, 새로 월남해 온 피난민이 이곳으로 들어와 살게 했다. 이러한 거주규칙에 따라 수많은 월남 피난민이 영락교회의 천막촌을 거쳐 나갔다.
신의주 보린원이 서울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한경직은 일본인이 경영하다가 두고 간 가마꾸라 보육원(후암동 소재)을 접수하여  1947년 ‘영락보린원’을 세우고 부모 잃은 아이들을 데려왔다. 이와 함께 영락교회의 3대 목표(선교, 교육, 봉사) 가운데 하나인 ‘봉사’가 시작되었다.

5. 피난민 자녀를 가르치는 학교설립

월남 피난민들이 서울에서 정착하게 되자 그동안 학업이 중단된 자녀들의 학교교육에 관심이 쏠렸다. 가족의 미래가 자녀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을 파악한 피난민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의지가 아주 강했다. 특히, 교인들은 -이북의 기독교 학교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독교 중등학교를 설립하자는 의견이 영락교회 안팎의 월남 피난민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월남한 교인들이 1946년 4월에 ‘이북기독교신도연합회’를 조직했는데 한경직이 이 단체의 회장이 되었다. 이 연합회가 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그 이듬해 봄, 미국정부 시찰단이 서울에 도착하여 교회상황과 학교교육상황을 살펴보고 교육의 장래에 관하여 논의하였는데, 이 기회에 이북기독교신도연합회의 한경직·이인식 목사는 시찰단에게 월남 피난민의 자녀교육이 매우 시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중학교설립을 위한 원조를 요청했다. 이 요청을 받아들인 시찰단과 미국 북장로회선교부는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정을 보조했다.  1947년 11월 25일 대광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12월 4일 임시교사인 서대문 피어선 성경학교에서 개교했다. 신입생이 1학년에서 5학년까지 291명 선발되었으며, 한경직이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또 백영엽 목사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학교의 건축기금 모금을 위하여 한경직은 그 이듬해에 미국으로 갔다. 아침에 벌어서 저녁에 먹고 사는 피난민들의 경제력으로는 건축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기에 그는 미국의 교계에다 협조를 구하여 상당한 건축기금을 모금했다.
대광학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되자, 한경직은 중등여학교 설립문제를 꺼내 들었다. 1950년 6월 그는 영락교회의 부속건물을 임시 교사로 하여, 북한 선천에 있었던 보성학교를 개교하게 했다. 초대 교장에 김양선 목사가 취임했다. 이리하여서 영락교회의 3대 목표가운데 하나인 ‘교육’(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

6. 한국전쟁 기간(1950-53년)의 디아코니아(사회봉사)

1950년 6·25전쟁이라 일컫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유엔군과 국군이 9월에 서울을 탈환했다. 이때 부산에서 서울로 온 한경직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보린원이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무사히 지내온 아이들이 그를 보고 반갑게 마중 나오는 모습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하였고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11월 하순부터 평양 교인들이 대거 고향을 떠나야 했다. 1·4후퇴가 시작되었다. 이때, 서울의 영락교회 교인 2/3가 부산으로 피난 갔다.
전쟁 중에도 디아코니아 사역에 대한 한경직의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교인들은 한경직의 인도로 전쟁미망인(22명)과 고아(82명)를 돌보는 ‘다비다모자원’을 설립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여전도회 회원들이 군 병원에서 침대를 정리하고 옷을 세탁했다. 상이군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운영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학교교육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 부모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모아 야간에 기독교 정신으로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자 했다. 집사 김찬호(나중에 장로교회 목사가 됨)가 1951년 8월에 서울에서 성경구락부를 열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이듬해(1952) 5월 백상용 집사와 함께 한경직을 찾아가서 성경구락부의 운영에 관하여 의논했다. 한경직은 교회 건물 베다니에서 야간 성경구락부 중등부 과정을 시작하도록 했다. 이 성경구락부가 영락학원으로 발전했다. 그해 3월 1일 북한 정주에 있었던 오산학교의 재건을 위한 모임을 가졌는데, 한경직은 모교 재건의 발기인이 되었고 이어서 상임위원으로 참여했다. 같은 시기, 평양에 있던 숭실대학을 재건하고자 서울에서 ‘숭실재건확대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여기에도 참석한 한경직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강요로 폐교 당한 학교를 재건하는데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숭실대학이 1954년 영락교회에서 개교할 때 그가 학장으로 일했다. 부산으로 피난갔던 보성여학교도 영락교회의 서울 복귀(1953년 9월)와 함께 교회 안으로 복귀했다. 그 해 12월에 한경직과 영락교회는 돈암동에 경로원(양로원)과 모자원을 설립했다.
한경직은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위기·좌절·절망이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 민족의 위기·좌절·절망으로 확대되었을 때, 그는 위기·좌절·절망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들을 위로하며 힘껏 돌보았다.

7. 아시아 교회와 연대하며 섬긴 에큐메니컬운동 지도자

한경직은 1955년 봄 한국 장로교 제 40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가을에는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제 9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봉사활동은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총회장으로서 미국 장로교 북장로회 선교협의회(1956년 4월 뉴욕)에 참석한 다음에 유럽과 아프리카 기니야 등지를 방문했다. 이때부터 그는 세계 교회 에큐메니컬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57년 12월 28일부터 아프리카 가나에서 개최된 제 6회 국제선교협의회(IMC)에 한경직은 한국기독교협의회 대표로 참석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경직은 “실향민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회”라는 제목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의 전후실상(戰後實狀)을 소개하고 전쟁의 상처와 폐허를 극복하고 빠르게 부흥하는 한국 교회를 설명했다. 그 즈음의 한경직은 동(東)아시아 교회들의 연대와 연합에 관심이 깊어갔다. 즉, 아시아 교회들의 에큐메니컬운동에 관심이 컸다. 아시아 대륙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정치적으로 독립한 신생 국가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 적지 않은 나라들이 여전히 -독립은 했으나- 정치적으로 안전하지 못하고 또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고 가난하여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 상황도 불안정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경직의 판단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이 쉽게 민심을 동요시키고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기가 쉬운 환경이었다. 이미 6·25전쟁 전후와 전쟁기간에 북한의 현실 공산주의를 충분히 경험한 한경직은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막아내기 위하여 아시아 교회들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1957년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동아(東亞)기독교협의회’를 결성했다. 이때 한경직은 한국 교회가 여기에 참여하도록 앞장서서 추진했다. 동아기독교협의회는 14개국의 아시아 교회들이 서로 교제하며 공동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함께 협력하여 당면한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로 모였다. 한국에서는 감리교회, 장로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협의회가 여기에 가입했다. 이로써 세계 교회의 에큐메니컬운동과 연계된 아시아 교회들의 ‘에큐메니컬운동’에 시동이 걸렸다.  1958년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내란으로 말미암아 그곳의 교회가 파손되고 피난민 교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동아기독교협의회를 통해서 아시아의 많은 교회들이 원조운동을 전개했고, 한국 교회도 1,000불을 모금하여 보냈다.
한경직은 또한 아시아의 교회가 비록 “신생(新生)” 교회이긴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위 모(母)교회인 서양의 교회에 의존적으로 기대지 말고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양(미국) 교회와 아시아(한국) 교회의 상호 대등한 수평적 관계의 연합운동을 강조했다. 1950년대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두 세대 앞선 안목이었다고 본다. 그는 “협력이라는 것은 독립한 두 개체 사이에 성립하는데,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의존하는 관계라면 협력이 성립되지 아니한다. 에큐메니컬 협력이라는 것도 독립한 교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본디 처음부터) 자립자강하는 교회였고, 8·15해방 이후에 외국(미국) 교회의 도움을 많이 입고 있는데, 이제는 독립하는 교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미래 교회의 지도자인 아시아(한국)의 신학생은 영·미국과 유럽으로만 유학가지 말고 이제는 아시아의 기독교 대학이나 신학교로 유학하여 이 대륙/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미국과 유럽의 교회가 아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이제부터는 아시아 교회도 미국과 유럽에 선교사를 파송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만 흐르는 일방 통행식 선교사 파송이 아니라 쌍방 통행식 선교사 교류를  통한 대등한 선교 협력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영락교회의 4대 신앙이념(노선) 가운데 하나인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교회 상호간 협력과 연합 사업”이 추진되었다.

8. 선한 사마리아인의 교회: “교회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단체”

한경직은 신약성경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에서 상부상조의 정신과 실천을 파악했다. 믿는 무리가 모든 재산을 팔아 유무상통(有無相通)하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는 교회였다(행 4:32). 이를 통하여 그는 상부상조 정신의 기독교적 기원이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에 있다고 보았다. 상부상조의 정신에 관하여 한경직은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설교로 강조했다.
상부상조 정신의 실천은 한경직에게 기독교 신앙인의 “자연적 발로”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믿는 자의 가슴에 가득 찬 나머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형제된 사람을 ‘마땅히’ 돌보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정신이다. 나의 재산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신앙인에게 마땅한 의무인 것은, 그 재산을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고 나는 청지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웃을 향한 책임감과 의무감은 인간 삶의 연대성에서 비롯된다. 연대성이란 사람의 삶이 제각각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사람사는 사회는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고 또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 배에 탄 승객과 같은데, 승객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모든 승객과 항해하는 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낱낱의 사람이 서로 연계되어 있기에,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따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다. 이 같은 논리에서, 내가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 그 결실이 결국 나에게 유익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그 반대로, 내가 만일 이웃의 어려움을 못 본채 외면하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한다면 장차 내가 속한 사회가 그로 말미암아 어려워 질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되면 나도 그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거리에 깡통 차고 다니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아마도 10년이 지난 이후 그들이 장성해서 결국은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가 나와 내 가족(후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 당한 이웃을 돕는 일은 바로 나를 돕는 것이다. 그를 돕는 것은 그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선이 아니라, 그와 함께 같은 배를 타고 있는(공동체적 연대성) 나의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신앙인은 연대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직장, 회사, 사회에 대한 “공덕심(公德心)과 공익심(公益心)”을 가져야 한다고 한경직이 강조했다. 이것은 지금의(2012년도) 한국 교회가 새로이 자각하는바 교회의 사회적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지칭한 것이라 본다. 또한 우리 사회는 낱낱의 사람이 서로 촘촘히 연결된 “유기체(有機體)”이기에 우리가 서로서로 연대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곧 주님을 섬기는 착한 행실인바, 한경직은 예수님의 비유말씀 ‘양과 염소의 비유’(마태 25장)를 들어 지극히 작은 자와 더불어 나누는 행실은 곧 주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교회가 상부상조의 단체”라고 규정했다. 사도행전 예루살렘교회에서 첫 일곱 집사를 선출한 것은 봉사를 위함이었다는 점, 교회의 헌금은 본래 구제를 목적으로 거두었다는 점, 초대 교회 제직의 기본 사명도 전도와 구제에 있었다는 점에서 교회는 상부상조의 단체, 곧 교회는 사회에서 공적 책임을 다하는 공공성의 기관이라고 보았다.

9. 정리

한경직의 섬김의 삶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한 사람’이 이렇게 엄청나고 많은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더욱이 건강이 좋지 않은 병약한 몸으로! 그는 영락교회 담임목사로서 전국의 교회를 목회했다. 그는 목회자로서 사회 현실에 참여하여 기독교 정신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되도록 힘썼고 또 6·25전쟁 전후 퇴폐와 부패로 어지럽던 사회를 향해 강단에서 예언자적 선포를 했다. 그는 한국 장로교회의 목사로서 세계 교회의 지도자 노릇을 했다. 1992년 4월 29일 그가 템플턴상을 받는 식장에서 수상연설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시련기의 한국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 선교·봉사·교육의 연합활동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했으며 또 교회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1945년 8·15직후에 서울에는 “30개” 정도의 교회가 있었는데 1991년 말에는 “7,477개”의 교회가 있다고 밝혔다.
한경직의 봉사(섬김)와 연합활동은 사람과 사람의 협력(내한 선교사들 서로서로, 선교사와 한국인(토착인), 한국 교인들 서로서로), 교회 연합기구들과 단체들의 교류와 연합 사업(예, 한국기독교연합회(NCCK), 동아기독교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WCC)) 등으로 추진되었다. 한경직이 추구한 연합활동의 원리는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지향하는 교회 연합, 역사적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이 연합과 협조의 정신’이라는 인식, 그리고 ‘교회는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정신을 실천하는 단체’라는 인식이었다.  

끝으로, 2013년 WCC 제 10차 총회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는 한경직의 사회봉사 및 에큐메니컬운동을 오늘의 상황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그 운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세계화와 맞물린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맞이하여(glocalization: thinking global & doing local) 이 지역 교회들의 연대와 협력이 요청되는 이 시점에, 한경직이 1950년대에 선도(先導)하여 추진했던 ‘아시아’ 교회들의 에큐메니컬운동을 우리 세대에 새롭게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