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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라 사모

최사라 사모  (찬양사역자)

겨우살이에 굴하지 않은 인동초처럼 살아온 그녀,   최 사 라  사모
“저를 무명초라 불러주세요.”

(초청 및 음반 구입 011-9791-2920 / 033-252-5160 / 춘천하라장로교회)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그래도 내가 그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믿어 주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바보같고 어리석다 해도 그래도 내가 그 누구보다 현명한 길을 갈 수 있는 이유는 내 손에 지팡이를 쥐어주는 힘센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지난 1955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그녀는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겠다는 일념으로 MBC가요대전, 가요콩쿨대회등 출전하여 각종 대상을 수상하면서 인생의 꿈을 이루어가기 시작하였다. 더큰 중앙무대에서의 활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그녀는 라틴, 칸소네 가수로 밤무대 활동을 하다 폐병3기의 진단통보로 가수활동을 중지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신학을 전공하고 작은 시골교회 목회자의 아내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애절한 인동초같은 신앙.
강원도 춘천에 가면 하라장로교회를 섬기는 이규영목사(남편), 최사라(사모)와 자녀 에스더, 요한이 있다.
최사라, 23세 되던 해 한얼산기도원의 수련회를 통해 회개와 영적체험 후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밤무대 생활을 계속하였다. 갑자기 찾아온 폐병3기라는 절망의 진단, 그런 극한 상황속에서도(벨칸토 창법:횡경막을 포함한 복부의 근육으로 압력을 만들어줘야 되는 창법)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 일반적으로 사용 불가능한 폐를 이용하여 할 수 있는 노래를 계속했다는 사실은 아마도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가 아니었을까?

하나님을 만난 후 신앙은 지독하리만치 강했다. 성경을 읽어보면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게 많은지, 목사님은 신학할 것을 권면하였고 신학을 시작하자마자 교육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7년 동안 전도사 시절을 보내면서 결혼을 위해 기도하던 중 당시 춘천교도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있는 신랑(당시 전도사)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춘천 소양강에서 3시간 소요거리에 있는 조교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3년을 목회하였다. 이후 춘천 석사동에 우사를 임대, 개조해 만든 12평의 작은교회를 개척하였다.
“추워 견딜 수도 없는 겨울날, 직접 벽돌을 나르고 손수 못질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12평 작은 공간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떨리는 듯 그때를 회상하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잠시 말을 멈춘다.
그녀는 석사동에서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종교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계약금만 날리게 되었고 교도소선교 중 만난 출소자 기독반장청년에게 대출보증을 해준게 사기를 당해 경제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깊은 고난을 받기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교도소선교에 대한 우울증은 생활비, IMF, 배신등으로 얼룩지게 되어 그나마 하나님이 아니시면 어디에다 말하고 맡길 수 있을까? 그녀는 기도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무릎을 꿇었다.
“나는 널 위해 예수를 주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용서하고 모든걸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지게 해 주셨다.
경제적인 고난은 그리 십게 해결되지 않았다.
목사의 아내로 파출부까지 하였다. 금식으로 기도하다 회복이 안되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2001년, 그녀는 자신만의 노래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한국복음성가협회에서 개최하는 전국주부복음성가경연대회에 출전, 본선에서 은상을 수상하였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감동이었습니다.”
그 이후 김동국 전도사의 도움으로 음반을 제작하였고 본격적인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으로 어렵게 준비해서 만든 눈물의 음반이 많은이들에게 눈물을 주는 음반이 되었는데 정작 자신은 경제적으로 신용불량자란 독촉속에서 살고있다. 음반내는 사람들이 한두사람도 아니고 음반을 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는가?
공짜로 나눠주는 음반, 더욱 가중되는 경제적 빈곤, 세상가수와는 돈을 보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기도하고 준비만 하고 있을 뿐.

지난3년동안 찬양사역을 하면서 매일 0시 기도를 했다. 그야말로 죽지못해 살아오던 그 생활들, 혼잣말로 쓰던 낙서장의 글들이 극동방송으로 방송되었고 ‘낮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체험하였다. 지금은 출연한 그 방송, 영동극동방송의 ‘쉼터찬양방’(매주 금요일 방송)을 진행하면서 찬양을 가르치고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저는 무명초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름도 빚도없이 사역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방송을 진행하게 하시네요.”

“고난의 깊음이 계속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메마른 영혼들을 찾아 그들을 위로하고 회개시키는 일들이 제 사역의 이유입니다.”

“자신의 소망없음을 기도로 풀게되어 좋습니다. 신앙이 성장되고 낮아지고 있는게 유익입니다.”

“저의 詩를 곡으로 남기고 싶고 제작된 음반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으며 겸손하게 자신을 쳐서 스스로 낮아지게 됨을 통해 부지런한 복음전도자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말을 듣자 최사라는 사역자이기전에 신앙인이고 사역자이기전에 이미 목회자의 아내였기에 그 신실한 삶의 환경속에서 나타난 믿음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예수께서 ‘섯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예레미아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 기쁨도 즐거움도 회개후에 진정한 기쁨이요 즐거움이란 사실을 선포하고 싶다.
최사라 사모는 찬양사역자 ‘쌩키’를 존경한다. 쌩키같은 사역자를 꿈꾼다.

최사라는 “험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고백한다.
“저는 빚쟁이입니다. 남편과 가족, 그중에서 제일 큰빚은 하나님의 빚입니다. 이제 그 빚을 갚으려 합니다. 저의 음반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 음반을 통해 저의 남편의 목회를 돕기 원하고 저는 또 사역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남편을 돕고 싶습니다. ”

‘힘들때 힘들다고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들지만 그래도 견딜만은해요.’ 라고 말했으면 한다. 힘이 들지만 견딜만하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진짜 견디어 일으켜 세워주실 뿐 아니라 남을 일으켜 세울만한 힘까지 더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힘이 없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힘이 없다. 그래서 힘센 주님의 손에 쥐어져 영원히 하나님의 감옥에 구속된 사람.
그 갖힌 곳에 있는 그녀의 삶의 행복과 꿈은 마치 처절한 고난의 터널 끝을 기다리는 가슴을 찢는 사모함에 뭍어 있다. 이것이 지금 최사라 사모의 심정이다.

(초청 및 음반 구입 011-9791-2920 / 033-252-5160 / 춘천하라장로교회)

찬양신문 제13호  2003년 12월 31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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