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우 목사 (종교감리교회)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
   “어느 선교사님을 통하여 이런 예화를 들었습니다. 어떤 대장장이가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조수를 불러다 일을 맡겼습니다. 말굽(편자) 모형을 하나 주고서 똑같은 모양으로 100개를 만들어 놓으라고 명령하고 떠났습니다.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조수는 주인의 명령대로 말굽을 100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만들라는 크기가 아닌 엉뚱한 크기의 말굽을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주고 간 발굽과 똑같이 만들라고 했는데 어찌된 것이냐고 주인은 추궁했습니다. 조수는 주인이 남겨 놓고 간 말굽을 보고 그대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일의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조수는 주인이 남겨 놓고 간 모형을 보고서 말굽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것을 만들 때에는 주인이 남겨 두고 간 모형을 보고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전에 만든 말굽을 모형으로 삼아 만들고 . . . 이런 일이 반복되고, 100개 째 되는 말굽이 만들어졌을 때는 주인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 최영기 ; 43쇄 발행 2008.10.17. p.4)

   마르틴루터를 통해 시작된 종교개혁 500주년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종교개혁의 본래적인 취지는 무엇일까요?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처음의도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본래적인 데로 되돌려놓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기독교회는 박해와 조롱거리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기독교는 거대한 힘을 만들어내면서 본래 지향했던 표적에서 저만큼 빗나간 것을 깨달은 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몸부림에 생명을 걸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 일어나기 수세기 전부터 이전부터 성 프란키스쿠스, 페터 발도, 얀 후스, 존 위클리프 같은 중세교회 내의 개혁자들이 교회생활의 악습을 폭로했었다. 그런데 루터의 개혁운동이 이들과 다른 점은 단순한 교회생활의 타락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신학적 근원인 구원과 은총에 관한 교회의 교리를 공격했다는 데 있다.(브리태니커 세계 백과사전 1994년 한국어판 2쇄, p.584)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루터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 만인제사장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독교는 그의 철저한 성경연구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중세 가톨릭교회와 사제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갖게 되면서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성직은 매매되었으며, 성경적인 예배와 목회는 뒷전으로 밀려나,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에 대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은 교회의 본래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한국교회와 성직자들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한 도전 앞에 서게 되었다. 중세와는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본질적 차원에서 보면 한국교회의 영적현상은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스스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감히 한국교회의 개혁의 과제들을 점검해보며 몇 가지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1.성경으로 돌아가자.
   교회권위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다. 예수그리스도교회의 권위는 큰 교회를 일구어낸 실력 있는 목회자나, 남다르게 경건하게 사는 신령한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기독교는 마땅히 신본주의여야 한다고 강조하여 왔고  믿어 왔다. 그러나 종교개혁 때로부터 500여 년 동안 대단히 묘한 일이기는 하지만 개혁교회들은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에 기울어져 왔다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다. 개혁가들이 목숨을 걸고 강조하여 온 것은 성경중심 곧 신본주의이다. 루터의 개혁사상도 칼빈의 성경중심사상도 웨슬리의 체험적 경건사상도 모두가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 세기 동안 개혁교회들은 개혁자들이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성경을 따르기보다,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의 사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기스스로를 웨슬리안, 칼빈니안 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가 따르는 사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다투며 교파우월주의에 집착하여 왔다. 훌륭한 선각자들의 사상적 공헌을 무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개혁자들의 훌륭한 사상은 다 성경에서부터 나왔고, 모든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의 교회다운 가치관의 기준은 건물의 크기나 출석교인숫자와 헌금 액수나 사람들이 우러러 볼만한 사회적인 지위나 직책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래야 교회가 부흥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중심으로 회귀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캘리포니아 훌러신학교에서부터 시작된 소위 훌러 학파의 교회성장운동이 세계교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 영향을 받은 교회지도자들은 교회성장 목회성공주의에 매료되어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하느냐?’를 목회의 중심에 두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목회활동의 이유는 교회성장에 있었다. 목회에 대한한 어떤 질문이 주어져도 대답은 오직 하나 ‘백문일답’이었다. 그 대답은 ‘교회성장’이었다. 성경공부도, 새벽기도도, 예배도, 설교도 다 교회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교회목적을 가시적인 성장에 최고의 가치를 둠으로서 성장하는 교회는 좋은 교회, 성장하는 교회의 목회자는 스타덤에 오르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와 목회자는 상대적으로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지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주의자들에 의해서 인본주의적 사상에 종속되었다고 보여 진다.
   교회가 ‘성경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교회성장주의의 영향으로 오늘날 적지 않은 교회들이 소위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동안 드려오던 예전적인 예배가 너무 지루하고 은혜가 안 되어 교회성장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이유에서 예배의 형식과 의식의 과감한 파괴를 통하여 회중과 함께 하는 예배형식을 취하면서 예배의 전통적인 요소는 무서울 정도로 상실되어 갔다. 예배인도자는 성의(聖衣)를 벗어던지고, 예배 순서는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오직 찬양과 기도와 설교중심으로 단순화하였다. 그리고 설교도 상당히 현대화하여 화면에 성경구절과 설교 자료를 영상으로 보게 하면서 예배 참여하는 자들은 상당히 수월하게 되었고, 일부교회들은 상당한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생각해야할 두 가지 두려운 문제가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하나는 이 예배가 사람 중심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참석자들을 기쁘게 하고 결국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느냐?’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에 성경말씀과 찬송가까지 다 올려주는 친절함 때문에 참석자들은 대단히 편해진 것은 두 말 할 것 없지만, 이 일로 인하여 사실상 교인들의 손에서 성경을 놓아버리게 하는 위험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묘한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교인들을 편하고, 재미있게 하면 할수록 교회와 교인들의 삶에 세속화를 가속화시키고 영적으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사도행전4:19)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1:10)

3.성직의 거룩성이다.
   성직매매(聖職賣買) 라틴어Simonia라는 말은 사도행전8:18~24절의 마술사 시몬의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초기교회의 박해시대가 지나가면서 성직매매가 빈번히 문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451년 칼케돈총회에서 이것을 금하도록 조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중세에서 널리 자행되었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성직매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성직자가 된다는 것이 곧 세상적인 권력과 부와 영광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도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일이다. 대형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세속적 영향력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세속적인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교회의 권력을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성직자들이 자주 입는 자주색갈의 옷은 아마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빌라도가 채찍질하기 위하여 예수님에게 입히고 채찍질하고 모욕하고 조롱하던 때에 입었던 옷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붉은 옷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므로 고난과 희생 그 자체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은 그것이 성직의 권위를 상징처럼 자랑스러운 옷으로 바뀐 것같이 보인다.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성직은 고난과 겸손과 헌신이 그 상징이 될 때 거룩한 것이다.
   3.1운동 때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남강 이승훈선생은 56세 때 3.1운동 기독교 대표의 한 사람으로 가담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안방에서 편히 죽을 줄 알았더니 이제야 죽을 자리를 얻었구나.’ 그런데 독립선언문에 서명하는 일을 두고 서로 자기 종교인을 먼저 써야 한다며 좌충우돌하게 되었다. 이 때 이승훈선생이  ‘이거 죽는 순서야. 아무를 먼저 쓰면 어때. 의암(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이름을 먼저 써’라며 천도교에 첫 자리를 양보했고, 장로교 대표이름도 길선주목사에게 내어주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름 쓰는 순서가 순교하는 순서라면 어떨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김동길 박사의 최근 글 “나이 듦이 고맙다”를 인용해본다.
“. . . 3.1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민족대표33인 중에 왜 변절자가 많이 나왔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다는 것, 즉 언젠가 이 나라에 해방이 오리라는 믿음이 없었다는 게 변절의 이유라 할 만합니다. 왜정 말기, 일본이 전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전망이 너무나도 우세해지자 그들은 더 이상 조국해방을 기다리지 못하고 변절자의 대열에 들어가고 맙니다. 최린이나 박희도 같은 민족 대표들과 더불어 문학계에서도 명사로 이름 날렸던 춘원 이광수나 육당 최남선 같은 이들의 변절은 그래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 . 이와는 달리, 한용운선생이나 이승훈 선생 같은 분들은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애국자로서 자신의 생을 영광스럽게 바쳤습니다. ‘아무려면 일본이 한반도를 영원히 지배하겠는가? 한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이 민족은 결코 누군가의 지배 속에 놓일 민족이 아니다.’ 라는 조국 해방에 대한 믿음이 그분들의 생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pp.19~20)
성직자가 이 땅의 영광보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바라본다면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나 명예를 탐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을까? 성직의 길이 영광인가? 고난인가? 영광을 위한 고난의 길인가? 어느 날 예배를 위해 가운을 입고 있는데 마음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성의(聖衣)가 멍에인가, 날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