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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해 바로 서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소식이고 복음에 경멸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초기 로마시대에 복음을 영접한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로마당국과 이교도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기를 알아본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한 베드로와 같은 연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한 사람,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음이 매우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지금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으로 로마에 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이 볼 때, 특히 로마인이 볼 때 복음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지만 바울은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비록 유대땅 나사렛에서 나온 보잘 것 없는 목수인 예수를 저들 로마인들이 멸시할지도 모르지만 자기는 결코 부끄러워 할 수 없다는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서 나사렛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능력은 ‘본질적인 힘’을 의미하는데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폭발하는 힘,파괴하는 힘, 본질적으로 바꿔버리는 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폭발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 능력은 어떤 피조물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죄를 폭파하고, 죄의 삯인 사망을 폭파하고, 불신앙을 폭파하고, 사탄의 세력을 폭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폭발력이 복음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 즉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최절정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의 최고 표현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최고 표현이요 최절정이며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만족하지 않을 때는 복음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위대한 복음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게 하옵시고, 복음을 자랑하게 하옵소서. 아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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