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 세계적으로 성도들이 가장 많이 읽는 성경이 시23편일 것이다. 장례 때도 마찬가지다. 장례 땐 특히 4절이 큰 위로가 된다. 목회 경험상 유족 중 불신자들은 성경과 찬송을 찾기도 힘들고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기에 불신자가 함께 예배드릴 때는 찬송을 “천국에서 만나보자”(480장)만 반복해서 부르고, 성경도 시23편을 2~3회의 위로예배와 천국환송예배, 부활대망예배까지 나눠서 집중적으로 설교했더니 유족들과 성도들의 반응이 훨씬 더 좋았다. 지금 막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 낯선 곳을 외로이 홀로 떠돌지 않게 누군가가 함께 하며 보호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한 유족들에게 이 말씀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삶도 선물이고, 고통도 선물이며 죽음도 선물’이라 했던 정정숙님의 『아빠의 선물』(두란노)에 보면 근위축증이란 희귀병으로 투병하던 저자의 남편이 8년 동안의 극심한 고통 중에도 이 시23편을 통해 큰 위로를 받고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까지 암송하며 행복해 하더라고 했다. 아마 이 말씀을 통해 고통과 두려움을 이긴 경험자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싱싱한 꼴을 먹이기 위해 더 좋은 곳을 찾다보면 험한 산을 넘기도 하는데 그때 지나게 되는 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한 깊은 골짜기다. 골짜기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기에 이동 중에 지친 양떼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골짜기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음침한 곳에서 사나운 맹수가 나타날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고 표현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늘 푸른 풀밭에서만 지낸다면 마냥 행복하고 좋겠지만 예기치 못한 폭풍우가 있고 시련과 고난의 계절이 있다. 간혹 그 골짜기가 끝도 없이 계속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보호해줄 목자가 필요하다. 다윗의 노래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기억하라. 골짜기는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는 곳이며, 훗날 사람들이 그 골짜기 지나던 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골짜기를 지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선물일 수 있다고 믿자. 그러면 어떤 험한 골짜기로 지나더라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2)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
언젠가 영국에서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방법’에 대해 설문한 적 있었는데 ‘자동차와 고속철도나 비행기 타기’란 대답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기’란 대답이 가장 좋은 대답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맞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은 멀어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수많은 전쟁을 치룬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를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때문이라 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이 임박할수록 ‘외롭다’ ‘힘들다’는 말과 더불어 ‘두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해 주시는 목자! 양들이 곁에 목자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는 있어도 목자는 결코 자기 양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외로움과 어려움은 물론, 두려움을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도 ‘함께 하실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형통’이나 ‘용서’ 등 그 어떤 약속보다도 “주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을 가장 많이 남긴 것 같다.
3)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사망의 골짜기에서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것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다.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곧 ‘나를 편안하게 하고 안심시킨다’고 고백했다. 목자의 막대기는 그냥 막대기가 아니다. 끝에 쇠심이 박혀 있거나 뭉툭하게 만든 일종의 무기다. 다윗에게도 물맷돌과 함께 지팡이와 막대기가 양떼를 돌보는 중요한 무기였다.
물론 지팡이는 무기라기보다 양들을 보호하는 도구다. 꼴을 찾다가 물에 빠지거나 덤불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대열에서 이탈할 때 끌어내거나 잡아들이는 것이 바로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다. 그러니 지팡이는 양들을 구원하고 이끄는 사랑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사망의 골짜기라 하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했다. 원뜻은 ‘사망의 그림자의 골짜기’, 죽을 곳이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위협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림자가 위험할까? 문제는 실제 위험이 아니더라도 보고 놀라고 겁먹게 되는 건 틀림없다. 마찬가지다. 사단은 요란케만 할 뿐 믿는 자를 손 댈 수는 없다. 만유보다 크신 손으로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기 때문이다(요10:29).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 당할 때 피할 길을 주시고 감당할 만한 시험만 허락하신다(고전10:13). 두려워 말라.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마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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