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들 중에서 이 말씀만큼 나에게 위로를 준 것은 없었다"고 고백했던 시23편엔 절절이 다윗의 행복이 표현된다. 본문의 ‘내 영혼’은 ‘네페쉬’(히브리어), ‘생명’이라는 뜻이고, ‘소생시켰다’는 ‘다시 돌아오게 했다’는 뜻으로 이는 수많은 전쟁을 치뤘던 다윗이 그 전쟁들 속에서도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게 했다’ 곧 ‘나를 살려주셨다’는 감격 때문에 아마 눈물을 쏟으며 했던 고백이었던 것 같다.
1)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끌어올리신다!
양은 잘 구르는데 목자가 일으켜야만 설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양 떼를 지킨 목동 경험이 풍성한 다윗은 짐승처럼 사나운 사울과 블레셋 군대 그리고 사람들의 음모의 입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윗은 시40편에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2)라고 고백했다. ‘기가 막힐 웅덩이’를 다른 번역에서는 ‘무시무시한 웅덩이’(KJV), ‘절망의 웅덩이’(RSV), ‘끈적끈적한 웅덩이’(NIV)라고 했다.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멸망의 웅덩이’란 말이다. 우기 때 물을 받아두기 위해서 중동 지방에서는 물웅덩이를 옹기 형태처럼 안이 깊고 입구 쪽이 좁게 판다고 한다. 바닥은 진흙 뻘투성이라서 이런 웅덩이에 빠지면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 형제들이 요셉을 빠뜨렸던 웅덩이(창37:24)도 바로 이런 웅덩이였을 것이고, 눈물의 선지 예레미야가 말씀을 외치다 갇혔던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렘38:6)도 이런 구덩이였을 것이며, 사도바울이 빌립보의 한 여인에게 들린 귀신을 내쫓아주고 갇혔던 지하감옥(행16:24)도 이 웅덩이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모두 스스로 헤어나기 힘든 웅덩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끌어내셨다. 그래서 오히려 그 웅덩이는 요셉의 경우엔 애굽으로 향하는 총리 대신의 자리에 이르는 터널이 되었고, 예레미야나 바울에게는 사방의 문이 다 닫혀도 하늘문이 열리면 길이 있다는 더 강한 확신을 갖게 했다.
2) 영적 침체에서 회복시키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는 말씀은 영적 침체에 빠져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내 영혼에 새 힘을 불어넣으신다’는 의미도 있다. 시42편의 시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고 세 차례나 반복하며 불안을 호소했지만(5,11,43:5) 답을 알고 있듯이 이내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고, 시냇물 찾기에 갈급한 사슴처럼 하나님을 갈급해 했다(1절).
죄나 고난으로 인해 또는 실패를 경험하거나 심지어 성공한 후에 누구나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우울한 심정을 공개하기도 했고, 친구인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에게 “우울증과 육체적 고통으로 일주일이 넘게 죽음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절망감의 돌풍과 파도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거의 잃을 뻔했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양이 위기에 빠지는 건 자신의 무능력이나 부주의보다 목자를 잃었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즈(Martyn Lloyd Jones)는 모든 영적 침체의 근본 원인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므로 목회에 어려움을 겪었던 존 파이퍼(John Piper)가 벽에 28년 동안이나 ‘Hope in God(하나님을 바라라)’을 새겨놓았던 그런 자세를 갖는다면 소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3) 결국은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고집이 센 양들은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기에 양들이 지나간 곳은 골이 파이고, 먹던 풀밭에서만 먹기에 그 뿌리가 다 드러난다.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양들을 목자가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인도할 때 그 길을 ‘의의 길’이라 한다. 이 길은 ‘살 길’이자 ‘복된 길’이다(시1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 때문에 이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당신의 이름, 그 명예 때문에 자녀를 부정직이나 불법을 행하며 살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그들을 일깨우셨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당신의 이름 때문에 해방되게 하셨다(겔36:22-23).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행복이다. 양처럼 자기 길,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우리 안엔 희망이 없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하나님일 뿐이다. 하나님만 나침반으로 삼고 생의 가이드로 믿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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