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tv

Category
  제목 : 2025.3. -박명수 교수 / 1919년 3.1운동의 관점에서 본 한반도의 현 정세와 기독교의 역할



들어가는 말
        3.1 운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국내적인 문제로서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운동이다. 일본은 무단통치 기간에 조선인들을 압제하였고, 여기에서 한국인들은 항거하였다. 둘째는 일본과의 관계로 한일병합에 반대하여 나라의 주권을 되찾자는 독립운동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주권을 되찾기를 원했다. 셋째는 당시 변화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조선인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하기를 원했고, 이것은 민족 자결주의에 대한 지지와 더불어서 국제연맹 가입 주장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이 강연에서 3.1 운동의 세 번째 측면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3.1운동을 연구하면서 일제의 악정과 거기에서 부터의 독립이라는 한일관계에서 3.1운동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3.1 운동이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국제질서가 만들어 지는 과정 가운데서 발생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3.1 운동의 목적은 한국이 기독교정신에 기초한 자유민주적인 국제질서에 편입되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 대접을 받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이런 국가를 건설하는데 일본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고, 따라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독립하여 이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서의 독립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며, 독립은 이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목적은 1919년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 결과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으로 일차적으로 완성되었다.
        본 강연의 목적은 이런 3.1 운동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해방 후 냉전체재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세계의 일원으로 분명하게 서 있었다. 이것은 3.1 정신에 나타난 민주공화국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이런 자유민주주의적인 전통에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여기에 대한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한 때 중국의 개방은 중국의 민주화로 이어져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의 자유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보여 진다. 우리는 그 예를 최근 홍콩 사태에서 잘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도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 3.1운동으로 이루어진 민주공화제로서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가 강연이 답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본 강연은 이런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먼저 1919년 3.1운동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결국 이런 3.1 운동의 결과는 한국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의 설립을 이루었다고 본다. 그리고 다음으로 오늘의 한국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제 2차 세계 이후의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여기에 기초해서 한국이 어떤 방향을 취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I.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민족의 선택

1. 3.1 운동 당시의 국제정세
        제 1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냈다. 당시 세계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를 중심으로 제국주의 국가와 이들의 뒤를 따라서 새롭게 세계로 진출하려는 독일이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민족분쟁은 세계를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누었고, 그 결과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선진제국주의와 후발제국주의의 싸움이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이들은 서구제국주의를 반대하며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다. 이들은 노동자와 농민이 지배하는 프로렐타리아 국가를 만들고자 하였다. 결국 러시아제국이 붕괴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맹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1919년 3월 7일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을 만들어서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고자 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 초기에 전세는 독일이 우세했다. 그들은 신무기로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같은 연합국인 소련이 붕괴되었다. 잘못하면 영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세계가 붕괴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미국은 1917년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미국의 참여와 함께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2.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한민족의 선택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내세웠다. 그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은 서구민주주의의 오랜 명제를 꺼냈다. 그것은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기초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동의가 없는 정부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원칙은 이전의 제국주의들의 식민지 정책을 공격하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소련과 독일이 다같이 피통치자의 동의 없이 약소국가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의 이런 민족자결주의는 사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주장하는 것이며, 이런 민주적인 나라들이 건설되는 것이 바로 세계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윌슨은 원래 장로교목사의 아들로서 그 자신이 장로교의 평신도지도자였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뿌리는 청교도의 계약사상이다. 성경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계약이듯이, 법률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계약이다. 기독교가 성경에 어긋나면 안 되듯이 국가는 법률에 어긋나면 안 된다. 따라서 피통치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식민지지배는 결국 불법적인 것이며, 이런 불법적인 정신을 바꾸어 기독교적인 정신과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하 하는 것이 바로 윌슨의 이상이었다.    
        1919년 3.1운동은 바로 이런 국제정세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구 제국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이제는 소련 중심의 국제공산당(코민테른)과 미국 중심의 국제연맹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부 한국인들은 국제공산당에 관심을 가졌으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소련 공산당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새로운 질서를 강조하는 것을 환영하였다. 특히 미국에 있는 한인교포들은 오래 동안 한반도에 민주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했고, 이런 꿈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함께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꿈은 당시 각종 문서를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각종 독립청원서들은 한국이 독립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연맹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나 중국 상해와 같은 친 서방 지역만이 아니라 당시 볼셰비키 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연해주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에도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아울러서 이런 한국인들의 결단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정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헌장 7조에 의하면 “大韓民國은 --- 人類의 文化와 平和에 貢獻하기 爲하야 國際聯盟에 加入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면 3.1운동에서 한국인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자유진영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3. 독립운동가들이 이해한 일본의 정체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독일이 유럽에서 평화를 깨뜨리고 전쟁을 가져왔다면 지금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일본을 아세아의 프로이센(독일)이라고 불렀다. 1918년 11월 25일 대한인국민회가 윌슨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지금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이 패망하고 있어 평화를 되찾고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또 다른 프로이센(일본)이 그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평화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독일이 어떻게 유럽 여러 나라를 차례로 침략했는지 잘 알고 있다. 1919년 11월 말 상해에 있는 신한청년당은 윌슨에게 보낸 청원서에서 일본이 어떻게 아세아 대륙을 침략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원래 일본은 과거 천년동안 무단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자유주의나 평화주의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며, 따라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국제연맹과 같은 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나라이다. 따라서 이들은 미국이 일본을 파트너로 하여 국제연맹에서 협력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한청년당의 청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은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만주는 이미 그 손에 들어갔고, 몽고는 그 세력 하에 있으며, 지금은 중국에서 우월권을 인정받아 산동반도를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아울러서 대만을 근거지로 하여 남양군도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은 결국 세계적인 제국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으며, 미국과도 언젠가는 전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경의 유학생들이 발표한 2.8 선언서에는 일본이야 말로 동양평화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과거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가 동양의 평화를 해치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고, 중국도 신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일본의 조선지배는 조선 사람들의 원한을 맺게 만들어서 오히려 아시아 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다.
        이같은 일본에 대한 염려는 1919년 3.1절에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의 조선지배는 한반도의 사람들의 마음에 원한을 맺히게 하여 동양 평화를 어렵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가르는 주된 축인 4억 중국 사람들이 일본을 두려워하고, 질시하는 마음을 만들어 그 결과 동양전체가 함께 넘어져서 망하는 비운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중국인들을 두렵게 만들어서 결국은 동양평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즉, 독일이 유럽의 평화를 파괴하는 것처럼 일본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은 미국과 함께 세계평화를 논할 자역이 없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4.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조선의 미래  
        그러면 이같은 국제정치 가운데서 조선은 과연 어떤 나라를 추구하는가? 독립운동가들은 무엇보다도 조선은 미국이 바라는 국가, 즉 민주주의를 꿈꾸는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한청년당은 1919년 당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기관은 기독교이며, 기독교는 한민족의 국교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밝히면서 기독교를 통하여 민주주의가 한민족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일본은 기독교를 박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서 신한청년당은 조선에 대해서 원래는 대 제국이었으나 평화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현재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은 일본과는 달리 무력을 숭상하지 않고, 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다. 현재 조선은 윌슨과 같이 국가는 그 구성원의 동의에 기초하여 세워져야 한다는 원칙에 절대 긍정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조선은 결국 독립이 된다면 선진제국의 모범을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실 이같은 민주국가에 대한 꿈은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 이미 미주에 있는 교포들에게서 나타났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한일병합이 이루어진 1910년 가을 미주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는 앞으로 세워질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제를 기초로 한 대한민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주의 [신한민보]는 독일이 미국에 항복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이제는 세계가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질서에 편입되게 된다고 언급하면서 한국도 그런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신생 민주국가에 대한 꿈은 1919년 4월 필리델피아에서 열린 대한인총대표회의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열린 이 대회에서 미주의 교포들은 자신들이 세우기를 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나라는 첫째, 기독교적인 정신에 입각한 나라이다. 이들은 3.1운동과 앞으로 만들어진 임시정부에 기독교적인 교양을 가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새로 세워질 국가는 기독교적인 정신에 입각한 국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정부형태를 따른 민주정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민주주의가 많이 있다. 그러나 미주의 교포들은 그 중에서도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하였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제도이다.
        이런 미주 한인들의 소원은 그대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 헌장은 우선 3.1 운동이 하나님과 사람의 뜻이 어우러져(神人協應) 이루어진 것이며, 대한민국은 신의 뜻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이며, 동시에 이 나라는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기독교만이 독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명(神名)인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로 이 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분산되어야 하며, 개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속하기 위하여 국제연맹에 가입하여 자유민주세계의 일원으로서 사명을 다 감당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당시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민국이 어디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불어오고 있던 소련중심의 국제공산당이 아니라 미국중심의 자유세계였던 것이다.    

5. 태평양전쟁 시대의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자유세계는 대한민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3.1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세계는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한대로 발전하였다. 일본은 더욱 군국주의적인 나라가 되었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더 이상 미국과 서방국가를 뒤 따르는 2등 국가가 아니라 미국과 맞먹는 1등 국가가 될 것을 꿈꾸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이 우려한 대로 만주를 침략하고, 이런 일본에게 국제연맹은 걸림돌이 되었고, 결국 국제연맹에서 일본은 탈퇴하였다. 이런 일본의 태도는 점 점 더 극단화되어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시작하였고,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3.1운동 당시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미 예언한 대로였다.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자유세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은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소망을 가져왔다. 그것은 일본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구미위원부를 만들어서 과거 일본과 연대했던 미국에 대해서 이제는 한국과 연대해서 대일전에 나설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이승만은 미국, 중국, 한국을 연대해서 반일전선을 만들려고 하였다. 여기에는 중국의 장개석이 포함된다. 그러면 이런 연대관계를 만드는 공동분모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기독교와 민주주의이다. 특별히 미국의 기독교인들인 미국이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도와서 아시아에 기독교문명을 건설하고, 더 나아가서 아시아를 민주적인 질서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한국에서 일했던 미국인 선교사들 뿐 만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했던 피치부부와 같은 이들도 포함해서 기독교인친한회를 만들었다.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와 손을 잡고 아시아를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 속으로 포함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의 설립은 이런 한국의 국제질서 편입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1919년 한국인이 가졌던 꿈이 곧바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1942년 대서양헌장을 통해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다시 확인했고, 1943년에는 카이로 선언을 통해서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적인 나라로 만든다는 선언을 했고,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은 한국의 자유 독립을 막는 일본을 패망시키고, 한국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노선을 걷는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었다. 1919년 3.1 운동의 꿈은 1948년에 이루졌다.           

6. 요약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3.1운동은 구제국주의 질서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둘째, 3.1 운동 당시 국제사회는 프로렐타리아 혁명을 목표로 하는 소련중심의 국제공산주의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는 미국 중심의 국제연맹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었고, 한국은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국제질서에 편입하고자 했다. 셋째, 한국인들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이런 국제질서를 가로막은 장애물이며, 따라서 국제사회는 한국을 일본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넷째, 한국은 기독교와 미국식 민주주의에 기초한 국가가 될 것을 원했으며, 이것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다섯째, 이런 3.1운동의 정신은 1919년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의 발발 이후 미국은 일본을 이런 국제질서에 위배되는 국가로 인식하고, 한국을 일본에서 해방 시켜 자유롭고 독립적인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이것은 1948년 대한민국의 설립의 이루어졌다.

II.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 속의 대한민국과 기독교의 역할

1,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질서 재편과 대한민국의 발전
        제 2차 세계대전은 1차 대전과 전선 형성이 다르다. 우선 과거 연합국의 일원이었지만 러시아의 붕괴이후에 반 연합국의 진영에 속했던 소련이 연합국으로 재편입되었다. 과거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이 이제는 독일과 더불어서 주축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런 구도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좋은 구도였다. 왜냐하면 한국이 그렇게 원하던 구도, 즉 한미중의 연합전선과 일본의 대결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소위 냉전시대가 바로 등장하였다. 냉전시대는 2차 대전과는 다른 세계질서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는 소련을 중심으로하는 공산권과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자유세계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또 다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변화이다. 원래 장개석 주도의 중국은 미국과 같은 연합국이었지만 결국 장개석은 중국에서 밀려나고 모택동의 공산당이 새롭게 등장하였고, 이 세력은 미국과 관계를 단절하고 소련과 동맹을 맺었다. 원래 일본은 태평양 전쟁 시에 미국의 적대국이었다. 그러나 전후에 일본은 미국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개편되었고, 자유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미국의 목표는 일본을 자유민주국가로 만들어서 미국의 협력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적국이 이제 우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소련에 기울자 미국은 일본을 국제정치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이 원하는 구도는 아니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더욱 분명해진 냉전 구도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자유진영과 소련과 중국이라는 공산진영으로 나뉘게 되었고, 여기에 북한은 공산진영으로 남한은 민주진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냉전 구도는 3.1 운동 이후 한국민이 꿈 꾸었던 자유민주적인 국제질서에의 편입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3.1 운동은 볼셰비키 혁명 보다는 국제연맹을 택했는데, 전후의 냉전 구도 때문에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것은 남한이었고, 북한은 소련의 공산권에 속하게 되었다. 남한은 3.1 정신을 계승하여 민주공화국을 만들었지만 북한은 3.1 정신을 부정하고, 빨치산 혁명에 근거한 인민공화국을 만들었다. 또한 이런 냉전체재는 남한에게는 또 다른 고민을 가져왔다. 그것은 미국이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적대적이었던 일본이 이제는 우방국가로 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개항부터 한미관계에 의존해서 생존하려고 하였다. 이런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은 매우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일본은 역시 자본주의 국가였고, 한국은 미일과 더불어서 같은 자본주의진영에 속하는 나라였다. 냉전 시대 한반도의 존재는 냉전의 최전선에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도 일본도 이런 한반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의 안보와 경제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미국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큰 기여를 했다. 일본도 기술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한미일 삼각 연대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승만이 한미관계를 수립하는데 기여했다면 박정희는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일성은 한국을 지탱하는 두 갓끈이 미국과 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박정희는 바로 그 한쪽 끈인 한일관계를 복원시킨 것이다.
        냉전시대에 이루어진 한미일 삼각 연대는 남한에 엄청난 기회를 가져 왔다. 이같은 자유연대는 우선 한반도를 다시금 독재체재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독재체재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한반도가 자유연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 한반도는 급격하게 서구적인 기준에 맞는 새로운 세계로 재편하게 되었다. 휴전선과 냉전체재가 더 이상 한반도에 유교적인 중화문화와 국제공산주의의 위협을 막아 주었고, 이런 안정적인 배경에서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기독교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성장을 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경쟁자는 유교와 공산주의였다, 하지만 이런 사상들은 냉전체재로 인해 더 이상 기독교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냉전체재는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불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축복이 된 것이다.
    
2. 중국의 부상과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
        하지만 1970년대 한반도 주변에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었다. 그것은 중국의 부상이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의 개방을 돕고, 경제발전을 달성하도록 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중국을 돕고, 소련은 견제하였다. 그리해서 중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다시금 세계무대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1980년대 말, 소련은 붕괴되었고, 세계는 미국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그리고 동유럽도 공산주의에서 벗어나서 자본주의 국가로 편입되었고, 멀지 않아 중국도 민주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후쿠야먀는 [역사의 종언]에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말했고, 이것을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동구권의 몰락과 중국의 개방은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사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중국은 발전이 정지되었다. 문화혁명을 통해서 중국은 퇴보되었고, 중국은 제 3세계를 무대로 국제정치에서 주도권을 갖고자 하였지만 사실 중국은 후진국이 되었다. 모택동은 중국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후퇴시켰다. 그러나 등소평은 다시금 중국을 개방시키려 했다. 이렇게 중국이 개방이 되자 한반도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중국발전의 모델이 된 것이다.
        먼저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었다. 먼저 한국의 상품과 문화는 중국을 휩쓸었고, 중국에서 박정희는 연구대상이었다. 과거 한반도의 역사에서 한국이 중국의 우위에 서 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중국에 가서 선진국의 위치에서 행동할 수 있었다. 미국의 중국 개방정책에 한국은 엄청난 이익을 본 것이다. 한국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심지어 중국을 얕잡아 보기도 하였다.
        중국의 개방은 기독교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그것은 중국선교이다.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해외선교의 자유화는 중국선교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60년대와 70년대 가강 놀라운 성장을 한 한국 기독교는 90년대부터 중국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기독교는 중국선교의 가장 중요한 주체였다, 다시 말하면 한국 기독교는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선교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기대한 대로 나가지 않았다. 새롭게 등장한 중국 공산당 주석 시진핑은 미국을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중국이 공산당의 원칙을 지키는 독자적인 국가로 남기를 원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자유민주국가가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 대립해서 구 체재를 지키며 다시금 냉전체재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지금 현재 중국은 과거 소련을 대신해서 공산주의의 핵심국가로서 재정립했으며, 다시 과거 냉전체재로 돌아 간 것이다.
        이같은 중국은 두 가지 점에서 한국에 위협이 되고 있다. 첫째는 과거 중화주의에 기초를 둔 중국의 영향이 한반도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오래 동안 대륙의 질서에서 벗어나서 서구세계문명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으로 다시금 과거 중화질서에 편입되고 말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공산주의와의 대결이다. 중국은 아직도 공산주의를 정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나라이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 공산주의는 속성상 국제적이다. 따라서 중국의 공산주의는 분명 남한의 좌파와 연대해서 한국을 공산화하려는 음모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다시금 남한사회가 공산주의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은 당장 주변 아세아 국가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먼저 중국의 가장 남쪽에 있는 월남은 이런 위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손을 잡고 있으며, 홍콩은 대대적인 시위로 중국에 흡수되기를 거부하고 있고, 대만도 이런 위협 때문에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나토도 중국의 부상을 과거 소련 보다도 더 국제사회에 위협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일본의 부상이 중국 4억 인구를 불안에 떨게 했다면 지금은 중국의 부상이 중국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새로운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인 현재 아세아의 현상인 것이다.
                 
3. 미국의 중국 봉쇄정책과 새로운 국제전략
        미국은 원래 중국을 개방시켜 중국과 더불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려고 했다. 이것은 과거부터 미국이 중국에 기대했던 바이다. 하지만 중국은 번번이 미국의 기대를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때 미국은 모택동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모택동은 미국 대신 소련을 택했고, 최근 미국은 다시 같은 꿈을 가졌으나 시진핑이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긴 시간을 거쳐서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신 냉전체재가 된 것이다.
        신 냉전 체재 하에서의 미국은 현재 중국 봉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해서 미국은 우선 기존에 중국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던 많은 정책들을 변경시키고 있다. 우선 중국의 상품에 관세를 매겨 중국 상품의 미국 진출을 막고 있고, 미국의 기술이 중국으로 이전되어 중국이 미국에 대등한 기술을 보유하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며, 중국 학생의 미국 유학을 막아 미국의 정부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며, 중국 주변에 신무기를 배치해서 중국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과거 냉전시대의 봉쇄정책이 다시금 부활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미국의 우방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중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미일관계를 더 긴밀하게 복원하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인도와도 관계를 강화해서 기존의 태평양동맹에서 더 나아사거 인도-태평양 동맹을 강화하고자 한다. 아울러서 중국의 실크로드 복원작전을 봉쇄하기 위해서 중앙아시아와의 관계도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중국은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여, 한국을 끌어들여 미국에 대항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제 1 큰 위협은 중국이며, 중국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미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미 키진저 같은 국제정치학자들은 미중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앞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보다도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단지 미국에만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중국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일차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 약 2세기 동안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중화문명권의 중심 역할을 잃어버렸고, 지금 그 영광을 회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중국이 과거와 같이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이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아시아는 더 이상 중국의 유교문명권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으로 과거와 같은 아시아에서의 문명종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자유와 문명을 위해서 중국과의 관계 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4. 일본의 재등장과 자유세계에서의 일본의 위치
        일본의 제 2차 세계대전의 패전은 일본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은 패전한 일본에 미국적 민주질서를 이식하였다. 그리해서 미국은 천황을 명목상의 존재로 만들었고, 서구의 민주질서를 도입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맥아더는 일본의 민주화는 일본의 기독교화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의 기독교 선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매우 강력한 염려를 하고 있다. 과거 자신들의 아시아지배가 아시아의 평화를 붕괴시킨 것을 잘 아는 일본은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아시아의 변화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일본이 강력하게 기댈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이것이 현재 미국과 일본의 공동기반이다.
        일본은 일본의 방위를 위해서는 단지 과거와 같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헌법을 수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주장 배후에는 일본의 극우세력이 있다. 이들은 과거 일본군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한국인들은 일본의 극우세력이 과거와 같은 군국시대로 향하면 어떻게 되나를 염려한다. 이것은 한국의 오래된 반일감정과 함께 일본의 우파에 대한 두려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필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현재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칠 만큼 위협적인가를 물었다. 그는 대담하기를 현재의 일본은 과거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군국주의 일본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만일 일본이 그렇게 나가려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탈퇴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버려야 하는데, 현재 일본이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극우세력이 현재는 한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중국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는 한, 중, 일의 삼각동맹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일본의 우경화가 아니라 아시아 대륙을 다시 한 번 재패하려는 중국몽(中國夢)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의 야욕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언젠가 일본이 기회가 오면 그렇게 바꾸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그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가지 않고, 우리와 협력할 수 있는 자유 우방으로 남도록 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한국이 중국 편에 서지 않을까 염려한다고 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한국의 부흥은 일본의 미래에 큰 위협이 되고, 일본은 한국에 기술이전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 한일 간의 갈등의 근본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에게 같은 민주진영으로서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하고, 북한의 위협에서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5. 새로운 국제질서 속의 한국과 기독교의 선택은?
        현재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관계에서 한국이 나가야할 방향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과거의 냉전구도를 약간 변화시켜 과거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미국과 중국의 대립으로 바꾸어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단지 경제 분쟁에서 멈추지 않고, 정치, 문화, 종교 모든 분야에서 분쟁이 확대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서구적인 국제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강력한 소망이 있었다. 이것은 이승만의 한미동맹과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 운동에서 잘 들어난다. 하지만 이같은 서구중심적인 정책에 반대해서 소위 후기 식민지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후기 식민지주의는 식민지정책을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의 부활을 강조하였다. 박정희는 한편으로는 조국의 근대화를 외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한국의 전통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정책은 충효사상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이런 정책은 전두환의 제 5공화국 시대에 헌법에 “민족문화와 전통문화의 보호와 육성”이라는 조항을 넣게 만들었다. 소위 민족운동의 부활이다.
        남한사회에 이런 민족주의의 부활과 함께 자유민주질서에 도전하는 또 다른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종북세력의 등장이다. 70년대까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글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재를 수호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화운동에서 멈추지 않고, 반미운동으로 이것을 확산시키면서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들에게 통일은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이며, 자유민주주의는 통일을 방해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념이 되고 말았다. 결국 민족주의와 종북세력이 공동으로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를 부정하게 되었다.
        현재 한반도는 민족주의와 종북세력이 결탁한 반 자유민주주의적인 전선이 매우 강하게 형성되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결합한 것이 바로 김일성 주체사상이며, 이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반미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에 가장 반대되는 세력이 바로 기독교인 것이다. 기독교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반대하며, 무신론인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거꾸로 기독교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핵심세력이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이것을 거부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종북세력간의 대결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이런 종북주의자들은 가능한대로 한미관계를 단절시키고, 중국 중심의 북방질서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능한대로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에서 삭제하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서 기독교 중심의 보수세력은 이런 종북좌파의 흐름을 차단하고, 3.1 운동과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살려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양진영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으며, 이런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 민족과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과연 대한민국의 발전에 유익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과거 중화주의의 이념은 근대사회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와 대치되는 것이다. 중국이 갖고 있는 중국몽은 근대의 아시아가 이룩해 놓은 근대질서를 부정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주의와 용도폐기된 사회주의의 혼합물이다. 이런 중국몽은 아시아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기 보다는 과거로 회귀시키기 쉽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한미관계를 강화하여 중국의 과거 회귀적인 국제질서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아시아 여러나라를 괴롭게 했다면, 현재는 중화질서를 회복하여 아시아 제국의 중심이 되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은 중국 중심의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남아서 중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인가? 라는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차적으로는 대한민국을 3.1 운동의 정신을 따라서 분명한 자유민주질서의 국가로 지켜야 한다. 1919년 우리 민족은 미국과 연합해서 일본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서 아시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자유세계로 지켜져야 일본도 자유세계로 안전하게 남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안전하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아시아가 자유로운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우리의 동족인 북한이 인권과 자유가 없는 나라이며, 중국에는 수 많은 소수민족과 많은 동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더불어서 북한과 중국의 자유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독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는 한미관계가 위태로울 때 마다 이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 미국의 정신은 기독교와 민주주의라는 가치 위에 세워졌다. 한반도에서 이런 미국의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은 한국교회가 거의 유일하다. 사실 한국 기독교는 미국 기독교와 중국 기독교와 연대해서 중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현재 한국인들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일본의 극우화를 염려하고 있다. 사실 일본 내에서 일본의 극우화를 염려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는 일본 기독교와 협조해서 일본의 극우화를 막아야 한다. 비록 일본의 극우세력이 한국에 있어서 중국과 비교할 만큼의 강력한 세력은 아니지만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피해자였던 한국에게 일본의 극우세력을 여전히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일본의 기독교와 협력하여 일본의 극우화를 저지하는 한편, 일본의 진보세력과 함께 자유로운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서 협력해야 한다. 한미중일의 기독교가 자유 아시아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독교의 오랜 꿈은 종교적으로는 아시아의 복음화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세계의 수립이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주의가 다시금 아시아의 중심사상이 된다면 이런 한국 기독교의 꿈은 점 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기독교는 미, 중, 일의 기독교와 연대해서 아시아의 자유를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6. 요약
        우리는 이상에서 다음의 몇가지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다시금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었고, 여기에는 과거 독립운동당시 우방이었던 중국은 공산권으로, 적대국이었던 일본은 자유세계로 입장을 바꾸었다.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협조 아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당시 한국 기독교는 매우 빠른 성장을 보였다. 둘째, 1970년대를 지나가면서 중국은 개방되었고, 90년대 초에 한중관계는 회복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에 커다란 선교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중국에 시진핑 체재가 등장하면서 중국은 과거의 중화주의와 공산주의로 회귀하고자 한다. 이것은 극동만이 아니라 세계평화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셋째, 이렇게 중국이 변하자 미국은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신냉전체재를 선포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을 봉쇄하는 체재로 가고 있다. 이런 미국의 변화는 미국의 우방들에게 같은 로선을 걸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넷째, 일본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중국봉쇄정책에 호응하여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우익은 다시금 과거 군국주의를 일으키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이런 행동은 아시아의 평화를 깨뜨리는 단계라기 보다는 아직 대중국의 방어선을 만들려는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섯째, 이렇게 동북아시아가 신냉전체재에 들어서고 있는데, 한국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종북주의가 한편으로 빈미 친중국의 입장을 갖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유세계에 머물고자 한다.

맺는 말: 3.1 운동에서 본 동북아의 정세와 한국 기독교의 선택  
        3.1 운동은 한국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 3.1운동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의 독립만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했고, 이런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가 만든 국제연맹에 가입할 것을 결의했다. 당시 볼셰비키 혁명이후 국제 공산당을 만들었으나 임시정부는 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
        1919년 3.1 운동 당시 한국인들이 꾸었던 꿈은 실제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는 일본을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다음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본과의 전쟁을 했고, 미국은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을 자유롭고, 독립된 나라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1945년 해방과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은 3.1 운동과 카이로 선언에 그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 후 대한민국은 3.1 정신을 계승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해방 후 이런 자유민주주의는 미국과의 연대는 물론이고, 미국의 권유로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하여 일본의 기술을 이전받았고, 중국의 개방이후 중국과의 교류 이래 한반도는 역사이래 찾아 볼 수 없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해서 이제는 후진국에서 벗어나서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매우 중요한 도전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북아시아 질서의 변화이다. 개방으로 나갈 줄 알았던 중국이 다시금 중화주의와 공산주의로 복귀하며, 더 나아가서 그동안 이룬 성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맹주로 다시금 복귀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가장 가까이 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중국의 영향권으로 복귀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기독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한국 기독교는 지금까지 한국이 자유세계와 연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기독교를 통하여 자유와 민주주의가 들어왔으며, 3.운동 당시 자유민주주의의 입장을 견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으며, 해방 후 대한민국의 건국에도 앞장섰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통 받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기독교는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필자는 결론적으로 대한민국과 기독교는 현재의 상황에서 두가지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대한민국과 기독교는 중화주의와 공산주의로 돌아가려는 중국로선에 설 것이 아니라 미국과 같은 자유우방 국가들과 손을 잡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세계문명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자유세계와의 연대를 상실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과거와 같은 어두움의 세계로 돌아갈 위험에 빠지게 된다.
        둘째, 대한민국과 기독교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가들과 손을 잡고, 또한 이들 나라의 기독교인들과 힘을 합하여 중국을 복음화하고, 민주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이 다른 선진민주국가와 같이 기독교신앙에 기초를 둔 민주국가가 될 때, 중국은 패권국가가 되는 것을 포기할 것이며, 따라서 다른 나라들도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처럼,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럴 때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세계의 중심국가인 미국은 대한민국에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도 대한민국이 그런 입장에 서기를 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는 근본적으로 여기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 많은 계층 가운데서 이같은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다. 과거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에 민주주의 도입하고, 발전시킨 것처럼, 지금 현재 한국 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