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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화평케 하는 자) - 이철신 목사 (영락교회담임)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날 우리 사회 같이 이렇게 갈등과 분쟁이 치열한 나라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갈등지수가 두 번째로 높은 나라입니다. 첫 번째가 터키이고 두 번째가 우리나라인데요. 터키는 종교적/민족적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갈등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한국은 단일민족이고 종교적 분쟁도 크지 않은데 갈등지수가 높은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지역과 경제과 세계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습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우리나라의 갈등이 많은 원인으로 분단을 들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나라에서 국민들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잠재의식 깊은 곳에 갈등의 문제를 쌓아가고 있다고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인 분쟁이 생기면 화해와 조정이 되지 않고 갈등상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화해와 평화의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화해와 중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됩니다. 화해와 중재를 하려고 노력할수록 양측으로부터 비난과 배척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색분자처럼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있지 말고 이 편에 서던지 저 편에 서던지 분명히 하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만약 개인적인 입장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상대측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배척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촛불파, 태극기파가 강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저희 교회 안에도 이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들이 있는데요. 촛불파쪽에서는 저를 태극기파라고 생각하고 제 발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태극기파 쪽에서는 제가 태극기파로서의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항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임목사로서 교회 전체를 화평하게 잘 세워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는 복음이고 교회 안에 정치와 이념으로 인한 다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늘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나 늘 분쟁과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복음주의협의회 설교를 준비하며 ‘화평케 하는 자’라는 제목을 가지고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화평케 할 수 있는가.

저는 겸손한 사람이 화평케 할 권위도 있고 자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비우고 경쟁을 포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즉 먼저 무장을 해제해야 다른 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자격과 권위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겸손해야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 존중할 수 있고, 그 때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자격과 권위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김명혁 목사님은 오늘 설교를 의뢰하시며 설교의 방향을 한경직 목사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으로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이 늘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한목사님을 따라가기가 힘든데, 한목사님의 후임목사인 저에게 한목사님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한목사님은 훌륭하셨는데 이철신목사는 왜 그러시오?” 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굉장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따라가기 어렵다고 목표 자체를 낮게 잡을 수는 없기에, 목표를 높이 세우고 잘 따라가지는 못해도 따라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목사님과 사석에서 대화하는 중에 제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분들이 한목사님의 훌륭한 점에 대해 많은 말을 하면,  그런 얘기를 듣고 있다가 “나는 죄인입니다” 말씀하셨지요. 한목사님이 그러실 때면 한목사님을 훌륭하다고 말한 사람도,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도 다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곤 했지요.

개인적으로도 한목사님의 겸손함 앞에 당황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목사님의 겸손함의 수준이 너무 높다보니 일어난 일들인데요. 한목사님은 저보다 50살이나 더 많으시고, 제 위치나 입장도 한목사님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젊은 목사인 저를 담임목사로 세워주시고 목자님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늘 만나서 대화를 마치고 일어설 때마다 “담임 목사님,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하고 겸손하게 요청하셨습니다. “한목사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셔야지 제가 어떻게 한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까….” 말씀드리고 사양해도, 한사코 기도해달라고 강권하시니 늘 제가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친 후에는 제가 또 한목사님께 기도부탁을 드렸지요. 그래서 서로 기도하고 일어서는 일을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겸손한 목사님의 모습을 뵐 때마다 그 앞에서는 더 조심하게 되고 주신 말씀을 더 경청하고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늘 하였습니다.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자로서의 또 다른 자격은 관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칙과 상식과 법을 다른 사람이 잘 못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을 관용하고 받아주며 오히려 격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화해와 평화의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정진경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몇 번 들었습니다. 연합활동을 하는데 실무를 맡은 책임자가 행정과 재정이 좀 미숙한 분이었어서 다른 분들에게 지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깐깐하게 공격적으로 지적하시는 분이 있었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나빠졌지만 누가 나서서 중재하기가 난감했지요.
그때 한목사님께서 지속적으로 지적하시는 분에게 “그게 성경에 있습니까.” 물으셨다고 해요. 실무책임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뭘 숨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미숙해서 잘 못하는 것 뿐이지, 성경에서 죄로 간주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지요. 한목사님은 성경에서 죄로 여기는 것이 아니면 받아들이고 관용하자는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화해를 이루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원칙과 법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바른 생각과 주장을 잘 이야기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내 주장을 강조하느라 불화와 분쟁이 생긴다면 도리어 해가 됩니다.
화해를 이루고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감싸안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럴 때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모임에서 화해와 평화와 통일에 대해 토론한 후에, 우리 속한 공동체, 즉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우리로 말미암아 화평케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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