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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와 호서대학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 철학박사(Ph. D. 북한교회사 전공) 극동방송 근무, 성세감리교회와 목양감리교회 담임. 호서대 인문대학 겸임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역임. 현재 북한교회연구원(NCRC) 원장 한국기독교통일포럼 상임대표 외. 저서 <평화통일과 북한복음화> 외 다수

  제목 : (0121) 신촌(新村)교회(황해도 송화군)



                               신촌(新村)교회(황해도 송화군)
                   -예전엔 송화군, 지금은 과일군에 있었던 교회-

신촌교회는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에 있었는데, 송화군에는 교회가 대단히 많았다.
1938년도 장로교 주소록을 보면 송화군 안에 설흔여섯 개의 교회 이름이 나온다.
송화군에 있었던 교회들 가운데 풍천읍(豐川邑)교회와 송화읍교회가 잘 알려져 있다.

신촌교회는 1912년에 세워졌다.
기록을 보면  덕홀(德屹)교회가  신촌교회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덕흘교회라는 이름은 장로교 주소록을 비롯하여 여러 자료를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또 ‘덕흘리’라는 지명도 발견되지 않는다.

                                 ▣ 황해도 출신들이 담임하다 ▣

신촌교회는 처음에는 평신도 두 분이 교회를 지도했는데 그 이름이 유동승(劉東承)과 김형목(金亨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어 방학성(方學聖)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방학성 목사는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한문을 공부했다.
이 분은 청소년 시절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1926년에 졸업을 했다(19회).  
졸업하기 이전 여러 곳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다가 졸업한 그 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방 목사는 신촌교회 하나만 담임한 것이 아니라 양지동(陽池洞)교회를 함께 담임했다.
방학성 목사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에 월남해서 전라북도 김제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한 뒤 소천했다.

1938년에 박성겸(朴聖謙) 목사가 부임했다.
박성겸 목사는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서 1938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했다(33회).  
졸업한 그 해에 목사 안수를 받고 신촌교회에 부임했는데 도은(道隱)교회를 함께 담임하다가 3년 뒤에는 도은교회만 담임했다.
박성겸 목사님도 1951년에 월남했는데 월남할 때 노회록과 직인, 의사봉인 고퇴, 최초의 한글성경인 「로스역」을 가지고 왔다.
황해노회는 이것을 총신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성겸 목사는 백령도에서 목회하다가 서울로 왔고  파주에서도 목회했는데 황해노회장을 역임했고 1972년에 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장을 지냈다.

                                      ▣ 옛터를 찾기 어렵게 되다 ▣

신촌교회의 예전 주소는 황해도 송화군 천동면(泉洞面) 신촌리(新村里)였다.
‘신촌리’라는 이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1967년에 송화군의 서부지역을 떼어 과일군을 새로 만들었다.
그 지역에는 규모가 아주 큰 과수종합농장이 있다.  
신촌리교회가 있었던 지역은 과일군에 속하게 되었다.
신촌리교회가 있었던 일대는 황해남도 과일군 신대리(新大里)가 되었다.
신촌리에서 ‘신’을 따오고,  대야리(大也里)에서 ‘대’를 따서 대야리라는 이름을 만든 것이다
신촌리는 모두 과수원이 되었고,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했다.
그러니까 신촌교회는 옛터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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