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지방무형문화재인 홍정택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 소리북을 전수 받을 때, 민속악 장단을 차근차근 가르치시면서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늘 “북을 실하게 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실하다’는 말은 ‘강하고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장단을 다 배울 때까지 때로는 손에 쥐가 나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북을 세게 치지 않으면 곧바로 나무람이 뒤따랐습니다. 북치는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북이 실하지 못하면 소리판에서 소리꾼과 제대로 호흡을 맞출 수 없고, 때로는 장시간 소리 끝에 무대에서 지쳐 가는 소리꾼을 고수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한동안 선생님으로부터 “북이 실하다”는 말을 소리북 공력에 대한 극찬으로 여겨 연습 때마다 온 힘을 다해 북통을 내려 쳤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소리북을 연습하도록 곁에서 흥보가 한 자락을 불러 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이제부터는 북채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하라”는 주문을 해 오셨습니다. 의아해 하는 저에게 “북이 실하지 못하면 힘을 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시며 “북가락의 강약과 완급을 잘 조절해서 소리판의 흐름을 능숙하게 끌고 갈 줄 알아야 진정한 명고수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실한 공력을 바탕으로 소리의 맥을 따라 강약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하면서 북 잡은 손놀림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귀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쁜 일과와 업무 때문에 정신 없이 지내면서 건강을 위해 잠깐씩 산행을 하면서 그 시간마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어떻게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사진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진관련 책과 짬짬이 씨름하며 지낸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제가 찍는 사진에 무슨 예술성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사진도 엄연히 표현예술의 한 장르이기 때문에 잠깐씩 짬을 내어 카메라를 들고 나갈 때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한 것을 조심스럽게 실험하고 확인했습니다. 그야말로 사진의 첫 걸음을 뗄 때는, 한 화면에 무조건 많은 정보를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욕심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쯤 흐른 오늘 곰곰 생각해 보니 소리북이나 사진이나 예술의 근본원리는 결국 똑같은 것 같습니다. 많은 전문사진작가들이 한결같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사진은 뺄셈”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기 시작하면서부터 사각의 제한된 공간 안에 들어오는 것만 빼내는 것이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본래 뺄셈과 같은 작업임은 분명합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가 아주 분명해질 때까지 필요 없는 피사체를 하나씩 둘씩 빼내고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사진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들을 할 것입니다. 힘이 힘쓰는 세상,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다 주워담으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필요 없는 것을 끊임없이 빼내는 작업이 뒤따르는 사진작업만큼 좋은 인생공부도 드문 것 같습니다. (2006. 10. 19.)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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