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로 불리는 제 또래 50대 초반의 사람들이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참 많았습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을 견디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매히 목숨을 잃고 그 과정에서 가문의 대가 끊기는 일이 잦았던 까닭에 그저 수가 많아야 하나라도 살아 남아 가문의 대를 이어갈 수 있다는 본능적인 의지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 가정에 적게는 네댓, 많게는 10여 명의 자녀들을 거느리는 이른 바 과출산의 흐름이 나타나자 그 부작용과 후유증을 지레 겁낸 정부 당국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한동안 출산억제 정책을 펴기도 했는데 너무 지나친 나머지 이제는 세계 제일의 저출산 국가가 되어 골머리를 싸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우글거리던 시절, 저희 이웃집에 자녀를 무려 11명이나 둔 딸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 어르신들은 아예 아이들 이름 대신 번호를 매겨서 하루 세끼 식사시간마다 번호를 불러 아이들 밥을 챙겨 먹이곤 했습니다. 하기야 밥 때가 되면 자동으로 밥솥 근처로 우르르 몰려서 행여 그 소중한 꽁보리밥 자리에 빠질세라 아이들이 너나없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덤비는 터라 뭐 굳이 번호를 부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툭하면 형제간에 아옹다옹하며 울고 삐지고 심지어는 형제간에 제법 살벌한 주먹질이 오가기도 하면서 비좁은 집에서 복작대며 지냈지만 그렁저렁 잘들 자라서 때가 되어 시집가고 장가가서 남들 사는 만큼은 그렇게 저렇게 잘들 살아가는 모양입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에 험한 세월을 부대끼며 버티시느라 잘 배우지도 못하신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교육에 관한 무슨 그럴 듯한 교육을 받으시지 못하고 그저 근근히 자식들의 방패막이로만 서 계셨어도 가정에서 형제들끼리 아옹다옹 서로 부대끼며 지내는 사이 세상살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성을 훈련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 장남보다는 둘째가 사교성이 더 좋다는 얘기도 그런 이유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 그들 또한 나처럼 때 되면 배고프고 먹고 나면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사실, 내가 나를 중히 여기는 만큼 그도 자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아주 상식적인 사실들을 학교에 가기 전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충분히 학습할 수 있었고,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었던 탓에, 늘 흙에서 뒹굴고 집밖에 나가면 개울에서 물장난 치며 지내는 사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개헤엄 정도는 대충 칠 줄 알았습니다. 공교육이 자꾸만 힘들어지는 이유가 극단적인 핵가족화, 아이 중심의 가족구조에서 오는 부작용과 후유증이 아닌가 싶어 가뜩이나 조심스러운데, 학교를 마치 무슨 지식만 배우러 가는 곳인 줄 아는 일부 계층에서 자꾸만 “제 자식은 제 손으로 곱게 가르쳐야만 한다”는 홈 스쿨 예찬론이 나오는 흐름이 몹시 염려스럽습니다. 보통 사람, 평범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사회성’을 훈련받으러 학교에 간다는 사실을 거의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2006. 8. 17.)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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