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열린문교회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저희 교회당에 대구에서 왔다는 어떤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대구에서 급한 볼 일이 있어 난생 처음 전주에 왔는데 그만 지갑을 몽땅 소매치기 당했다는 것, 전주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 몇 군데 가게에 들러 통사정을 했으나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낙심하여 지나다가 마침 교회 간판이 눈에 띄기에 그래도 목사님은 도와주시지 않을까 하여 염치불고하고 들렀다며 대구까지 갈 차비만 좀 빌려 주시면 도착 즉시 송금해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멀끔한 생김새나 말투가 거짓말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태도가 호의적이라고 판단했는지, 얼른 자기 집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이름까지 적어 주고는, 괜찮다는 데도 기어이 제 은행계좌번호까지 적어 달래서 제가 내미는 얼마간의 여비를 받고 감지덕지하며 떠나갔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교회당에 찾아오기 전에 이미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두어 번 속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냥 한 번 더 속아보자는 생각으로 돈을 내 주긴 했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을 꿰뚫는 재주가 제게 없는 마당에 일부러 저희 교회당을 찾아와서, 자신도 대구의 어느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데야 안 도와 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컨대 정말 곤경에 처해 있으니 한 번만 도와 주시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다”던 그 친구에게 보기 좋게 배신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가까운 사람들이 저를 아예 ‘세상 물정 몰라도 단단히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놀리는 것도 그렇고, 나의 선의가 허망히 짓밟힌 것도 그렇고...... 하여간 그 불쌍한 사기꾼 젊은이가 생각날 때마다 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낮은 신뢰도를 잘 포장된 맹세로 위장하며 남을 속이고 세상을 속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아 이 사회의 앞날을 생각할 때 마음이 늘 어두워져 오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앞서 말한 헛된 맹세만큼이나 좋지 않은 언어습성이 ‘허풍’입니다.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장’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만큼 흔한 나라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음식점 간판을 만들어 달 때도 걸핏하면 ‘원조’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요즘 우리 과학계에서는 ‘원천 기술’이라는 말이 유행이지요. 심심산골 오지의 초라한 건물에도 ‘세계@@협회 총본부’라는 거창한 간판을 즐겨 내겁니다. 예수님은, 오직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해야만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 아니오’가 분명한 이들은 쓸데없이 맹세를 하거나 과장하여 허풍을 떨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 해야 할 때 ‘아니오’하거나, ‘아니오’해야 할 때 ‘예’하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사람들의 눈치나 살피며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좋지 않은 습성은 없으십니까? 허풍으로 거짓을 일삼는 이들이 발붙이지 못하는 정직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예, 아니오’가 분명하여 짧은 몇 마디 말에도 정직하고 성실한 인격을 담아낼 줄 아는 좋은 습성을 우리 모두 길러야겠습니다. (2006.2.9.)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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